기후변화와 기업의 대응

 

 

 

 

 

들어가며

지구가 타들어 가고 있다. 언론도 기후변화 피해 사례를 속속 보도하며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를 실시간으로 경고하고 있다. 인류 존속을 위해 기후변화 대응책 마련에 전 세계가 혈안이 되어있지만, 가시적 성과는 미약하다. 2021년 IPCC 6차 보고서는 기후온난화가 예상보다 10년 빠르게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3도 상승한다면, 2100년 기근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3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구상 생물 종의 50%가 절멸할 수 있다는 끔찍한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그렇다. 미래의 지구는 생물다양성의 최대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이란 지구상에 생존하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생물이 지닌 유전자와 생물이 살아가는 서식지의 다양성까지 총칭한다. 즉, 생물다양성은 기후변화, 오염, 질병 발생과 같은 외부의 환경 충격까지 흡수해줌으로써 지구의 균형을 유지하고 조절해준다. 기후변화로 생물이 사라지고 다양성이 감소하면 생태계의 견고한 완충 기능도 그만큼 저하될 것이다. 흔히 연안의 잡초로 주목받지 못한 잘피나 갈대숲이 사라지면 탄소흡수량도 감소되고, 이들을 서식처로 살아가는 생물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듯 생물다양성은 지구의 균형과 생태계 조절의 핵심 요소다.

 

우리 바다와 우리 생물이 특별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 바다의 생물다양성은 얼마나 될까? 2010년 ‘세계해양생물센서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해양생물 종수는 9,900종이며, 단위 면적당(1,000km2) 종 수는 32종으로 해당 지수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위 논문에서 제시된 한국의 해양생물 종 수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제기됐다. 우리나라 해양생물 종수가 기관의 통계자료나 객관적 선행 논문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연구진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연안에서 출현(서식)이 보고된 해양생물(대형저서무척추동물)의 분류 및 생태 논문을 전수조사했다. 우리는 총 128개의 연구논문에서 확인된 우리나라 해역의 출현종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서해 16개, 남해 10개, 동해 12개 지역으로 나누어 분포도를 제시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우리나라 연안에 서식하는 대형저서무척추동물은 총 1,915종에 달했으며, 서해(829종), 남해(1,103종), 동해(621종)에 걸쳐 매우 다양한 분류군이 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 해역의 출현 종의 유연관계와 종수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갯벌이 잘 발달한 서해에서는 연성 저질에서 우점하는 갯지렁이가 속하는 환형동물문(316종)과 게를 포함하는 절지동물문(219종)의 종수가 가장 많았다. 남해는 갯벌과 함께 암반 조간대와 섬 생태계가 고루 발달한 것을 대변하듯, 고둥, 조개와 같은 연체동물문(416종)의 종수가 서해(249종)와 남해(190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해의 경우는 서해와 남해에 비해 환형, 절지, 연체동물의 비중은 줄고, 말미잘, 산호와 같은 자포동물문(55종)과 성게와 불가사리와 같은 극피동물문(31종)에 속하는 종들이 늘어났다. 한편, 세 바다에 동시에 출현한 종은 환형동물문(61종)이 가장 많았고, 연체동물문(19종), 절지동물문(8종), 자포동물문(4종)이 그 뒤를 이었다. 갯지렁이가 한반도 전역에 고르게 퍼져 서식함이 확인된 것이다. 한편, 제주도는 남해와 연결되어 있으나 남해와는 사뭇 다른 종 조성을 보였다. 이는 지리적으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해양생태계가 고립된 채로 진화해왔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우리는 총 38개 해역에 대한 종 목록과 유연관계를 분석하여 각 해역과 지역의 해양생물 건강성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세 해역과 대부분 지역에서 해양생물의 건강도가 우수하거나 보통 이상으로 평가됐다. 기존의 평가가 외국학자에 의해, 또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평가였다면, 이번 논문은 우리나라 전 바다에 걸친 통합적 평가란 점에서 의미가 컸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우리나라 바다와 국외 바다의 해양생물다양성을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된 점도 큰 성과라 하겠다.
종 수만 놓고 봐도 한국의 1,915종은 유럽 와덴해 400여 종, 영국 연안 530종, 터키 서부 연안 685종, 북태평양 576종, 북극(대륙붕 포함) 2,636종과 비교할 때 해양생물 다양성이 독보적으로 높음을 보여주었다.

 

위기의 바다에서 꿋꿋이 버텨온 우리 생물

이렇듯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높은 해양생물다양성을 가진 우리나라 바다도 작금의 현실에서 생물다양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위 연구에서 우리는 남양만, 부산, 울산 연안의 저서생태계 건강성이 가장 나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육상 기인 오염이나 간척 등에 의한 영향으로 여겨진다. 실제 시화호, 부산 연안, 울산 연안은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되어 관리하면서 수질의 경우 일부 개선 효과가 보고된 바 있으나 저서환경에 대해서는 크게 향상되지 않고 있어 향후 보다 적극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사례 연구로 시화호 간척, 새만금 간척, 그리고 태안 유류사 고가 장기적으로 해양저서생태계 군집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방조제 건설이나 유류사고 이후로 해양생태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다시 회복되는데 수-수십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과도한 연안 개발과 유류사고와 같은 인재로 인해 해양생태계가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으로 파괴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특히, 시화호, 새만금을 비롯하여 서해안을 따라 수없이 늘어진 인공방조제와 같은 ‘회색구조물’은 생물다양성 감소뿐만 아니라 오염 정화, 기후 조절, 연안 침식 방지와 같은 완충 기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므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리빙-쇼어라인, 숨 쉬는 바다로 가는 지름길

최근 미국에서는 인공해안선을 자연형으로 되돌리는 사업이 대세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1970년대 시작한 연안 침식 방지 사업을 2000년대부터 전 해안으로 확장하면서 친환경 서식지 조성사업으로 탈바꿈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존 해안선 개발에 이용되었던 콘크리트와 같은 인공제방을 철거하고, 대신 식생지나 굴밭 등을 자연적으로 조성하여 연안 침식을 줄이자는 것이다. 동·식물, 모래 또는 바위와 같은 천연재료를 활용하여 해안선을 연성화하는 생태공법을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리빙-쇼어라인은 연안 침식 방지 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 증진, 서식지 개선, 탄소 흡수력 증진, 오염 정화기능 개선, 해양산성화 완충 등 매우 다양한 부분에서 장점이 있는 효과적인 사업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홍콩,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일찍이 2012년부터 에코콘크리트와 패류를 활용해서 연안 침식을 방지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ECOncrete라는 환경엔지니어링 업체는 지난 10년간 미국, 네델란드, 모나코, 스페인의 연안과 항구 등지에 에코콘크리트 블록을 적용한 대규모 해양생태복원 사업에 앞장서 왔다.
2018년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인 볼보Volvo는 시드니 해양과학연구소가 주도하는 ‘Living Seawalls’란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호주 볼보가 친환경 거대 에코타일 시제품 50개를 시드니 항구 방파제에 부착한 것이다. 이 에코타일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재료로 3D 프린팅 기법으로 제작됐는데, 호주에 잘 발달한 맹그로브 나무뿌리, 산호초, 해안 암반의 형상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형상은 해양생물의 부착성을 높여 생물다양성을 증진시켰고, 다공성 세밀 구조도 추가해서 오염물질까지 잘 흡착해주는 기능도 배가했다고 한다.
홍콩에서는 2019년 동청 에코-쇼어라인 시범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전장 약 3.8km의 해안을 에코-쇼어라인으로 정비하는 사업으로 약 130km2 규모의 사업이다. 에코블럭, 굴패각, 암초, 조수웅덩이 등 다양한 자연구조물을 자연스러운 조간대 지형처럼 배치하고, 상부에는 염생식물도 심는 등 리빙-쇼어라인 생태공법을 복합적으로 적
용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홍콩 정부에서는 이를 통해 동청 해안지역의 해안서식지 질을 개선하여 해양생물다양성을 증진하며 관광객과 주민을 위한 해안 경관 개선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NOAA 리빙-쇼어라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연안습지 재해 저감 비용이 연간 25조, 1km2 당 생태계서비스 가치는 100억 원 상승, 투자 대비 효용인 사업 편익은 7배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해안선 1km2 조성으로 연간 110톤의 탄소를 추가 저장할 수 있고, 정화기능과 홍수조절 능력도 배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업의 가성비 측면에서도 재료, 설치비, 유지보수비 등이 적게 들어 매우 경제적인 사업으로 그 효과성이 입증된 셈이다. 최근 연안의 블루카본 탄소흡수 기능이 재조명 되면서 리빙-쇼어라인 사업은 기후위기 시대에 보다 적합하고 경제적인 해양생태계복원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K-리빙-쇼어라인, 국내 기업의 적극적 동참을 바라며

기후위기 대응과 함께 생물다양성 위기 대응은 오늘날 지구가 당면한 중차대한 문제다. 최근 선진국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의 노력은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다. 다만 몇몇선진 기업들이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스코POSCO의 경우, 철강공장에서 발생되는 제철부산물을 가치있게 활용함은 물론, 해양환경과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인공어초 트리톤을 이용한 ‘바다숲’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5월 비금융권 기업 중 최초로 ‘TNFD(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에 가입했다.
기아KIA는 올해 7월 해양수산부가 추진하는 국내 갯벌 식생복원 사업을 후원하고 나섰다. 기아는 갯벌의 탄소 흡수력을 강화하기 위한 식재 활동을 추진하고, 나아가 해양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시의적절한 포부를 밝혔다. 국외의 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를 선도하는 많은 기업들이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란 글로벌 아젠다 실현에 동참하고 ESG 경영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정부, 지역사회, 이해관계자와 기업을 넘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뜻을 모으고 길을 열어 실천하는 탄소중립의 길에 접어든 것 같다. 향후 보다 많은 국내 기업의 사회환원 참여와 탄소중립을 향한 글로벌 리더쉽을 기대해본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