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재난 극복 사례를 통해 본, 통합 사회,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

 
 
 
 
 

포스코 재난극복 135일의 기적

지난겨울 내내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함께 만든 기적, 꺼지지 않는 불꽃: 불가능을 가능케 한 포스코 재난극복 135일의 이야기』(나남,
2023)가 그것이다. 표지에는 ‘박상준 외’로 되어 있지만 19인의 필자가 함께 쓴 공저다. 공저자는 19인이지만, 책의 내용을 가능케 한 인터뷰이 인원까지 꼽으면 50여 명
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여기에 그치지도 않는다. 책이 다루는 내용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사실 140만여 명이 함께 쓴 책이라 해야 한다. 한 권의 책을 140만 여 명이 썼다는 말은 과장이긴 해도 거짓이 아니다. 연인원 140만여 명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친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함께 만든 기적, 꺼지지 않는 불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목적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인력이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었을까. 바로 포항제철소를 구하는 일이었다. 2022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초강력 태풍 힌남노로 인해 여의도 면적의 세 배나 되는 포항제철소의 주요 생산라인이 침수되었다. 깊게는 18미터나 되는 지하 시설이 물에 잠겼고, 물을 빼내고 보니 30센티미터 정도의 뻘이 공장 바닥을 가득 채웠다. 포항제철소 3문을 지나가는 작은 하천인 냉천이 역사상 처음으로 범람한 까닭이었다. 경영진의 현명한 조치로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에 고로를 세움으로써 보다 큰 피해를 막은 상태였지만, 포항제철소를 복구하느니 다시 짓는 것이 낫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제철소만의 문제도 아니었
다. 포항의 생산라인이 멈추면서 포스코의 국내외 사업망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사태를 단 135일 만에 정상화했다. 기적 같은 일이다. 포항제철소의 복구에 2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고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은 걸린다고들했다. 그런데 100일 만에 포항제철소의 주요 생산 공정을 복구하고 135일 만에 포스코의 모든 사업을 정상화했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기적을 가능케 한 인원이 총 140만여 명이었다. 포스코의 전체 임직원이 재난 극복의 핵심 역할을 했다. 지역사회는 물론이요 원근을 가리지 않고 공무원과 소방대에 해병대까지 나서서 이들을 도왔다. 경쟁사도 협력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시민들이 유무형의 후원을 보탰다. 대한민국 국민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벌어졌다. 이
또한 기적 같은 일이라 할 만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어떤 기업이 이렇게 전 사원이 똘똘 뭉쳐서 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신속하고도 안전하게 극복해 낸 적이 있었을까. 하나의 기업을 구하기 위해 지자체들에 경쟁 기업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국민들 상당수가 성원을 내는 일이 도대체 세상 어디에서 있었을까.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한 힘은 무엇일까.
이 사례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함께 만든 기적, 꺼지지 않는 불꽃』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이러한 질문이 한층 강해졌다. 재난 극복의 기적 같은 일들은 책에 두루 담았지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히 찾지 못했다. 발간사에서도 언급했듯이 관련 학계에서 향후 진지하게 탐구할 만한 문제이다. 여기에서는, 위의 책에서 내가 강조해 두었던 바를 조금 확장해 보고자 한다.

 

주체적 시민들의 공동체 구현

포스코가 이루어 낸 기적 같은 재난 극복 사례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다음 두 가지다. 범포스코인들이 공동체성을 구현했다는 사실이 하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이 시민 주체의 면모를 발휘했다는 점이 다른 하나다. 이 둘은 사실 뗄 수 없다. 동일한 사태를 집단과 개인의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기 때문이다. 범포스코인들이 저마다 시민답게 행동하면서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 이 사실이 주목된다. 이 사실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효과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연대, 유대를 확인해 주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앞에 온다. 진영 논리에 의한 공론장의 분열이 사회의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현 상황에서 이는 매우 소중한 효과이다. 이와 더불어, ‘기업시민’이라는 기업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현실에 비추어 폭넓고 심도 있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의미 있는 효과이다.


『함께 만든 기적, 꺼지지 않는 불꽃』의 곳곳에서 확인되듯이 냉천의 물이 포항제철소로 밀려든 순간부터 포스코인들은 이타적인 행위를 보였다. 물에 고립된 동료를 구하고, 위험이 커지기 전에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시행해서 공장의 피해를 줄여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주차된 자기 차의 피해를 돌보는 대신 동료를 구하고 회사의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한 것, 회사를 살리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판단하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솔선수범하며 나선 것, 출퇴근 개념도 없이 스물네 시간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 등이 재난 극복 135일간 포스코인들이 보인 행위이다.
이렇게 풀어 보면, 이들의 행위를 그저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개인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은 불충분해 보인다. 그럼으로써 생겨난 전체 차원의 효과가 매우 큰 까닭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공동체의 구현이다.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포스코인들이 그러한 이타적인 행위, 회사를 위한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전체로서 보인 모습이 공동체성의 구현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나의 안녕이 내가 속한 조직 전체의 안위와 뗄 수 없이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조직이 처한 위기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 능동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그들이 이룬 것은 바로 공동체였다. 서로의 삶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모두가 가족처럼 친척처럼 서로를 돌보는 사회 상태를 구현했다.
지난 135일에 걸쳐 이러한 공동체를 구현했을 때 포스코인들이 취한 면모는 시민주체에 해당한다. 시민이란 누구인가. 현대사회를 열어젖힌 시민혁명의 주체가 그들인데, 역사가 보여 주듯이 국가 사회 공동체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진다는 점을 핵심으로 한다. 신분제가 있던 전근대 사회에서 국가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은 사회 구성원 절대다수와 동떨어진 지배계급만의 일이었다. 이것을 바꾼 것이 시민혁명이요, 이를 가능케 한 기본원리가 천부인권, 주권재민 사상이다. 주지하듯이 천부인권 사상이란 모든 인간이 동등한 권리 곧 인권을 가지며, 이는 왕이나 귀족 같은 다른인간에게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주체들이 말 그대로 주체로서 더불어 사는 이상적인 국가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정이며 이를 이루고자 한 시도들이 우리 시대를 이루어 낸 시민혁명이다.
시민이 시민다운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간주하고 행동하는 데 있다. 실제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그러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 가까운 친지의 안위에 대한 고려를 앞세우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러한 이를 소시민이라고 구분하여 부르는 데는 시민의 시민다움, 시민성citizenship에 대한 사회의 바람이 있는 까닭이다.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 전반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의식이 요청된다. 자신의 개성과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아니 궁극적으로는 그를 얻는다. 바로 2019년 7월에 발표된 포스코 기업시민헌장의 첫 문장이다. 이어지는 믿음 곧 “우리는 사회의 자원을 활용하여 성장한 기업이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경제적 이윤 창출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인류의 번영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라는 선언 또한 바로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고도 올바른 것이다. 이러한 길을 걷는 기업이라면 시민다운 시민과 다를 바가 없다.
연인원 140만여 명이 이루어 낸 135일간의 기적이 입증하는 것은, 지난 5년간 포스코가 지향해 온 기업시민의 길이 실제적인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재난 초기부터 고객사를 위한 조치를 다각도로 시행하고 복구 과정 내내 ‘빠르게’가 아니라 ‘안전하게’를 원칙으로 삼은 것은 포스코의 기업시민다운 행보였고, 그토록 많은 국민이 포스코의 사업 정상화에 호응한 것은 기업시민으로서의 포스코의 행적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감지했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에 대한 인식도 크게 작용했지만, 협력사와 지자체 같은 보다 직접적인 관계에서는 그동안 포스코가 실천해 온 기업시민 경영이념의 효과가 보다 크게 작용했다. 이 또한 포항제철소와 협력사, 포스코와 사회가 공동체성을 함께 경험한 일이다.
포스코의 재난 극복 사례는 신자유주의의 그늘이 짙은 21세기 현재에도 시민성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구현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역사적으로도 드문 일인 만큼 그 의의를 명료히 해서 공유, 확산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면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싫다는 국민이 40%를넘을 만큼 진영 논리에 따라 공론장이 심각하게 분열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포스코의 재난 극복 과정에서 드러난 시민 정신과 공동체성을 우리 사회 전반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실천해 온 범포스코인의 경험이 우리 사회 전체의 경험으로 확장될 때,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통합 사회,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좀 더 명확해지리라고 믿는다.
것을 위해서도, 눈앞의 자기 일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시민성을 갖춘 시민이란 사르트르가 재미있게 정의한 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서의 지식인과 통한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재난 극복 과정의 포스코인들이 몸소 체현했다. 부서 간 장벽을 허물고 세대 간의 이해를 넓혀 가면서, 그들 저마다가 그동안 갇혀 있던 자기만의 울타리를 벗어나 공장과 회사의 보다 큰 전체를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자신의 업무가 조직 전체에서 갖는 기능과 의미를 전체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험지를 획득한 것이다. 동일한 경험을 포스코의 재난 극복 과정에 참여한 연인원 140만여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의식했든 아니든 몸으로 공유했다. 포항제철소가 멈추면 대한민국 제조업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으며 국가 경제 전반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복구 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사회 발전의 의미 있는 경로 : 기업시민

여기까지 와서 보면 140만여 명이 보인 135일의 기적이 단지 하나의 기업에 국한된 일일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들이 행한 일은 포항제철소라는 공장을 복구하고, 포스코 사업을 정상화한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경제에 미칠 위협을 최소화한 데 그치지도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 극복 과정에서 공동체를 경험하고 시민성을 체험한 일의 의미가 경제 분야에 한정될 수는 없다. 그 효과는 사회 전체에 미친다. 경제와 비경제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 사회 전체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 것인데, 이는 사회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면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회의 목적은 자신의 확대 재생산이다. 망하지 않고 자신을 유지하면서 좀 더 발전하는 것, 이것이 사회가 갖는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사회 구성원을 생산, 재생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일이다. 사회 구성원의 생산이란 출산이나 이민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계속 확보하는 것이고,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이란 그렇게 확충된 새로운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사회 구성원들이 물질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재화와 용역의 생산, 즉 경제 활동이다. 이렇게 사회 차원에서 보면 사회 구성원의 교육과 경제 활동이 별개의 일일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사회 구성원의 교육이 시민다운 시민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경제활동의 주체인 기업과 시민 양자가 사회의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밀접한관련을 맺는다는 점도 자명해진다. 이러한 자리에서 “기업의 경영활동은 사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사회와의 조화를 통해 성장하고 영속할 수 있다”라는 의식이 토대를 얻는다. 바로 2019년 7월에 발표된 포스코 기업시민헌장의 첫 문장이다. 이어지는 믿음 곧 “우리는 사회의 자원을 활용하여 성장한 기업이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경제적 이윤 창출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인류의 번영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라는 선언 또한 바로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고도 올바른 것이다. 이러한 길을 걷는 기업이라면 시민다운 시민과 다를 바가 없다.
연인원 140만여 명이 이루어 낸 135일간의 기적이 입증하는 것은, 지난 5년간 포스코가 지향해 온 기업시민의 길이 실제적인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재난 초기부터 고객사를 위한 조치를 다각도로 시행하고 복구 과정 내내 ‘빠르게’가 아니라 ‘안전하게’를 원칙으로 삼은 것은 포스코의 기업시민다운 행보였고, 그토록 많은 국민이 포스코의 사업 정상화에 호응한 것은 기업시민으로서의 포스코의 행적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감지했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에 대한 인식도 크게 작용했지만, 협력사와 지자체 같은 보다 직접적인 관계에서는 그동안 포스코가 실천해 온 기업시민 경영이념의 효과가 보다 크게 작용했다. 이 또한 포항제철소와 협력사, 포스코와 사회가 공동체성을 함께 경험한 일이다.
포스코의 재난 극복 사례는 신자유주의의 그늘이 짙은 21세기 현재에도 시민성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구현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역사적으로도 드문 일인 만큼 그 의의를 명료히 해서 공유, 확산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면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싫다는 국민이 40%를넘을 만큼 진영 논리에 따라 공론장이 심각하게 분열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포스코의 재난 극복 과정에서 드러난 시민 정신과 공동체성을 우리 사회 전반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실천해 온 범포스코인의 경험이 우리 사회 전체의 경험으로 확장될 때,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통합 사회,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좀 더 명확해지리라고 믿는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