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엔트로피

 

 

 

[엔트로피와 열역학 제2법칙]

탄소중립과 엔트로피entropy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엔트로피를 낮추거나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일work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열역학적 측면에서의 일work은 열heat과 함께 에너지 전달 방식의 하나인데, 열이나 일의 형태로공급된 에너지 중 유용한 일로 전환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부분이 엔트로피에 해당한다. 전기에너지라는 일을 펌프에 공급해서 지하수를 퍼 올리는 일을 하는 경우, 펌프내에서 발생하는 마찰로 인하여 공급한 전기에너지가 물을 퍼 올리는데 모두 사용되지 못하고, 일부가 열heat로 변환되면서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이때 마찰이 클 수록 엔트로피 변화량은 증가하며, 이론적으로 필요한 에너지 보다 더 많은 일 (전기에너지)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은 여러 형태로 정의할 수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열은 차가운 물질에서 뜨거운 물질로 이동할 수 없다’는 열전달의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양의 40도 물과 20도 물을 접촉시킨 경우, 40도의 물은 열을 잃고 20도의 물은 열을 얻어 결국 30도의 물이 된다는것은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40도의 물이 열을 얻어 50도가 되고 20도의 물은 열을 잃어 10도의 물이 되는 현상은, 에너지보존의 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을 만족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물의 온도가 평형 온도인 30도가 되는 과정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지 않지만, 50도와 10도가 되는 과정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2법칙과 엔트로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열역학 제1법칙과 달리, 열역학 제2법칙을 단순명료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열은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이동하지 않는다’, ‘열기관이 작동하려면 고온의 열원뿐만아니라 저온의 열원에서도 열교환이 필요하다’, ‘고립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프로세스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등 다양한 형태로 정의된다. 열역학 제2법칙을 엔트로피와 연관시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표현하는 경우에는, 먼저 엔트로피의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통계열역학에서는 엔트로피를 무질서도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를 사회·경제적 현상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통계열역학에서는 과학자의 시점에서 수많은 분자들로 구성된 시스템을 관찰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상태를 무질서도로 표현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시스템은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관찰의 대상이자 행위의 주체이기 때문에, 무질서도와 함께 자유도를 고려해야 한다. 엔트로피를 단순히 무질서도로 해석하게 되면, 무질서도를 낮추기 위하여 규제와 통제를 해야 한다는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엔트로피를 적용하는 경우, 통계열역학 관점의 엔트로피 보다는 전통열역학 관점의 엔트로피가 보다 편리하다. 전통열역학에서는 열이나 일의 형태로 공급된 에너지 중 유용한 일로 전환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부분을 엔트로피로 정의한다. 따라서, 경제적 엔트로피는 노동·토지·자본의 형태로 공급한 생산요소 중 유용한 생산으로 전환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 혹은 이를 보상하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표현할 수 있고, 사회적 엔트로피는 사회적 마찰과 갈등으로 인한 손실 혹은 이를 보상하는데 필요한 비용을의미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자연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을 흔히 경험하고 있다.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이 켜진 건물 안은 시원하며, 건물 안이 따뜻하더라도 냉장고 안에는 얼음이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에어컨과 냉장고가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물질과 에너지의 출입이 제한된 고립계isolatedsystem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의 프로세스만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정의한다. 건물과 냉장고는 고립계isolated system가 아니라 에너지 출입이 허용된 닫힌계closed system이기 때문에, 에어컨과 냉장고에 일 (전기에너지)이라는 비용을 치르면 내부의 온도와 엔트로피를 낮출 수 있게 된다. 물론 건물과 냉장고 내부의 엔트로피를 낮추더라도 외부의 엔트로피는 그 이상 증가하여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에어컨과 냉장고가 없는 우리의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에어컨과 냉장고 작동에 필수적인 전기와 냉매는 폭염, 혹한, 홍수, 가뭄 등 기후위기의 주범이다. 전기자체는 깨끗한 에너지이지만, 화석연료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기후위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소기와 염소기가 탄소에 결합된 염화불화탄소CFC, 흔히 프레온으로 알려진 냉매는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매우 안정한 화합물이지만, 자외선에 노출되면 염소 원자를 방출하여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한다. 오존층 파괴문제가 세계적인 주목을 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85년 미국의 기상위성인 님버스Nimbus 7호가 촬영한 오존층에 커다란 구멍 (오존홀)이 뚫린 남극대륙의 사진이었다 (그림 1).
엄청난 크기의 오존홀 사진과 함께 태양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층이 파괴되면 피부암, 백내장, 유전자 변이 등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연구결과는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염화불화탄소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는 ‘오존층 파괴물질의 생산과 규제에 관한 기후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가 1987년에 채택되었다.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 2060년에는 오존층이 1980년 수준으로 회복되리라는 예측도 있지만, 염화불화탄소를 대체하는 물질로 개발된 수소화불화탄소HFC의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의 1000배를 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구온난화지수란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같은 무게의 어떤 물질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한 수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제사회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는 파리협약을 2015년 채택하였고, 이후 각국은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과 에너지원의 재편이 필수다. 그러나 어떤 속도와 방법으로 추진하는지에 따라 우리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 (경제적 엔트로피)과 사회적 마찰과 혼란으로인한 비용 (사회적 엔트로피)이 달라지므로 신중한 검토와 함께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엔트로피 측면에서 본다면 최근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총배출량 대비 2030년 순배출량을 40% 이상 감축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종전보다 14% 상향된 수준으로 사회적·경제적 엔트로피를 과도하게 증가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지수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고려한다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2030년 탄소배출 목표는 좀 더 낮추어도 좋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목표를 낮추기 어려웠다면 안전한 원자력발전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했다. 마침전 세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5개국이 탄소저감에 원전을 활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국제사회에 선언한 참이었다. 남극대륙의 오존홀 사진이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자 오존이 유익한 물질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오존은 반응성이 강하여 눈과 호흡기 등 인체에 자극과 염증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이다. 반면 오존층은 대류가 거의 없는 성층권에 존재하면서 자외선을 차단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동일한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따라 인류에게 유익하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 원자력발전도 탄소중립 측면의 유용성과 안전 측면의 위험성이라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무작정 배제하기 보다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시점까지 만이라도 한시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상태함수와 경로함수]

탈원전과 기후위기에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기에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은 상황이다. 바로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문제다.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기관이나 탄소국경세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기업은 탄소중립 기술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하고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의 모든 부처와 지자체가 탄소중립에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을 소비하는 상황은 적절하지 않다. 심지어 군軍에서도 탄소중립을 고려한 무기체계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혹한 환경 하 에서도 적군에게 피해를 강제하여 전쟁억지력을 발휘하도록 개발해야 하는 무기체계에 탄소중립을 고려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저출산 문제도 결국 1960년대 정부의 잘못된 예측과 과도한 대책에서 시작되었다. 경제적으로 감당할 만한 적절한 인구수를 고려할 때 당시의 높은 출산율이 정부에게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이 될수록 출산율이 감소한다는 점과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의 수명이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저출산 정책을 시행하였다.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과도한 정책은 당시의 미래인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처럼 인구가 줄어든다면 2100년도 대한민국의 인구는 1600만 명 정도로, 구한말 당시 인구인 1500만명 수준이 된다. 누구도 원하는 방향의 결말은 아니겠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탄소중립은 넉넉히 달성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엔트로피와 탄소중립의 차이는 무엇일까? 엔트로피와 같은 열역학적 함수는 경로와 상관 없이 처음과 마지막 상태에 의해서만 변화량이 결정되는 상태함수state function 이지만, 탄소중립과 같은 정책적 함수는 과정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경로함수path function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해양전문가 중 한 분은 탈원전을 하면서 탄소중립도 달성하는 대안으로, 대류가 거의 없는 성층권과 같이 안정한 동해의 심해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의사결정 구조로는 채택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회적·경제적 엔트로피 증가를 억제하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경로들을 배제하고, 한 가지 경로만을 고집하며 과속하는 대한민국을 지켜보면 안타깝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2호

 

0 답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이벤트에 참여하실 경우, 댓글과 함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주세요.
이메일주소를 입력해도 홈페이지 상에서 공개되지 않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