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장의 올바른 해법 만들기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오늘날 우리는 한민족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해 경제적 번영은 물론 정치적 민주주의까지 이뤄냈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10위까지 올라섰고, 이달 초 UNCTAD(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는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고 공식선언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현재는 만족스럽고, 우리의 미래는 보장된 것일까?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명을 기록했고, 자살률은 10만명당 27명에 달했다. 모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악이다. 산업재해 치명율도 10만명당 4.6명(2019년 기준)으로 ILO(국제노동기구) 보고국가 중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발전했지만, 사회는 불안하고 구성원들은 불행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이렇게 불안한데 경제만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또 당연하게도 답은 ‘아니다’이다. 인구보너스의 혜택이 인구오너스의 충격으로 반전된 이후 저성장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위협요인은 이것만이 아니다. 기후환경 변화가 심각해지면서 지구촌 주요국가들의 2050 넷제로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반도체, 내연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 중후장대형 에너지다소비업종이 주력산업이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면 될테지만 국토여건상 경쟁국에 비해 발전량은 부족하고, 단가는 비싸질 수밖에 없다. 경쟁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넷제로 산업구조 전환은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과제이자 미루면 미룰수록 더 어려워지는 국가적 과제이다.
지속성장을 위협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구성 부문간 유기적 선순환 관계가 약해진 점이다. 무엇보다 과거의 성공방정식은 시효가 다했다. 낙수효과가 약해지고, 경제·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기업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따갑고 싸늘하다. 국민의 시선이 이렇다보니 기업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정책들이 속출하는 반면 기업의 신사업을 돕겠다는 정책들은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한민국 산업은 퍼스트 무버가 되지 않으면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포지션에 들어섰다. 4차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기술과 시장이 격변하고 있고, 산업패러다임 전환기에 시장선 점을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한데 코로나로 인해 이같은 변화들이 가속화되고 있는상태다. 상황이 급박해 지속성장의 핵심 아젠다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법찾기에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희소식 대신 대립과 갈등 상황만 증폭되는 모습이다.

 

[지금 기업부문은 변화의 물꼬 만들기에 공들이는 중]

사회는 기업 탓하고, 기업은 규제 탓하고, 전문가는 경고 휘슬만 불고 있는 지금 현재도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현재의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 나서서 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경제계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옛말처럼 기업부문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할 때임을 자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국가사회에 이런 저런 것을 해달라 주문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주문사항을 달성할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업부문의 역할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경제계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ESG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경영 확산이다. 지속성장가치들이 국제규범화되고 있다는 점, 글로벌 밸류체인의 정점에 있는 해외 바이어들이 협력사들에게 ESG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기업들의 사회적 가치 중시경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선도 기업들을 대상으로는 기업의 보유역량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도록 권장하고 있기도 하다. SK그룹의 경우처럼 ESG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부문에서 남보다 먼저 경쟁력을 확보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등 딥체인지를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계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또다른 변화의 물꼬는 국가발전 프로젝트이다. ESG 경영이 개별기업 차원에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면, 국가발전 프로젝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계 전체가 합심해 민간주도로 국가발전에 도움되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다. 9월까지 국민 공모를 받아서 프로젝트를 선정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저출산 고령화 해법도 나오고, 청년일자리 해법도 나오고, 탄소제로 해법도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제계가 국가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나선 데에는 국가의 다른 부문이 발전해야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최근 ESG 관련 동향과 몇가지 쟁점들]

경제계가 ESG 경영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과거 권고수준에 머물렀던 윤리경영이나 사회적 책임경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GRI(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와 ISO(국제표준화기구), SASB(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 같은 글로벌 표준화기구들은 ESG 국제규범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고, UN PRI(책임
자원칙)나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테스크포스) 같은 기관들은 참여기업들이 지켜야할 원칙과 기준을 만들고 있는 등 일련의 흐름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TCFD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재무정보공개 권고지침을 만들어 일정한 성과를 나타내자 최근 TNFD(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테스크포스)가 출범해 자연생태계 파괴를 막겠다는 취지로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한 지침개발에 나선 것처럼 ESG경영의 대상영역이 계속 확장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원칙과 기준들은 다시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지수)나 DJSI(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 FTSE Russell(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 러셀) 처럼 ESG 지수를 운영하는 기관들을 통해 기업이 지켜야할 강행규범화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증시에 상장된 우리 기업들은 MSCI 등의 요구에 따라 ESG실적을 공시해야 하며, 평가결과 등급이 낮으면 네가티브 스크리닝(보유지분·채권매각)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 상장했다고 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책임투자원칙을 천명하고, 2022년까지 2022년까지 전체 운용 자산의 50%를 ESG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힘을 싣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금융위에서도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할 방침을 발표했다. 
우리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최근 동향은 SASB에서 ‘기업가치에 영향 미칠 비재무정보, 즉 지속가능성 지표들’을 재무정보처럼 별도로 보고·공시토록 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올해말쯤 작성기준 초안이 공개될 예정인데, MSCI 등의 기존 지표를 준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등을 공개토록 할 가능성이 높다. 장치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 산업계에 혼란과 불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은 ESG 평가를 예고한 국민연금 등에서도 되풀이되는 쟁점이다. 국민연금은 투자기업 ESG 활동을 직접 평가할 방침을 정하고, 평가체계 수립을 추진 중에 있다.
필자는 이 쟁점과 관련해 ‘CO2 배출량이나 에너지 사용량’과 함께 ‘CO2 저감량이나 에너지 절약량’ 같은 활동지수를 함께 평가토록 하는 것이 ESG 경영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연구용역 완료 후가 아닌) 연구용역 수행과정에서 산업계 의견을 청취하기로 하였으나, 한국회계기준원으로부터는 ‘SASB는 유럽기업 위주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한국 제조업계 컨선이 반영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피드백을 받은 바 있다.
최근 국민연금의 탈석탄선언도 비슷한 쟁점을 안고 있다. 탈석탄 기조는 기업들도 공감하고 있지만 기업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발전기업들은 탈원전정책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발주하는 화력발전소 수주활동을 펼쳐 왔고, 친환경 발전역량을 높이 평가받아 중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 중이다. 그런데 이번 국민연금의 탈석탄선언은 국내기업의 해외수주를 저해함으로써 이산화탄소 저감기술이 낮은 중국기업이 독식토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지구촌 차원의 탄소중립 추진에 역효과가 유발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에서는 탈석탄 추진방안을 수립할 때 산업계와 충분히 협의키로 하였으나 기업현실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기업의 ESG 경영을 돕기 위한 몇가지 정책제언]

지금 세계는 4차산업혁명과 탄중립 등과 관련한 산업구조 격변기를 맞아 글로벌 선점경쟁이 치열하다. 독일 등 유럽의 친환경에너지 및 수소 선진국들은 사하라사막 북부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을 활용해 친환경 수소를 생산, 유럽으로 실어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 최대석유가스업체인 에퀴노르의 경우 앵글로-네델란드 셸, 프랑스 토탈, 빌게이츠재단과 연합해 Norhtern Light Project라는 것을 추진 중에 있다. 탄소다량배출지역에서 탄소포집시설을 설치하고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심해탱크에 저장한다는 23억불 짜리 프로젝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시장과 기술을 잘 아는 선도기업이 GP(무한책임 투자자)를 맡고, 재무적 투자자FI와 기술회사Tech Partner 등이 LP(유한책임 투자자)를 맡는 방식으로 이런 대형 투자를 추진할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지주회사 소속기업이 ESG 관련 펀딩에 나서려 해도 공정거래법과 자본시장법상의 금산분리와 경제력집중 억제규제에 막혀있기 때문인데, ESG나 미래전략산업 분야 펀딩을 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해외현지 펀딩 만이라도 규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과감한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 인센티브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2050 탄소중립목표는 현행 기술수준으로서는 실현하기 힘들어 엄두가 나지 않는 극히 어려운 목표이다. 실패위험이 큰 대형 R&D(연구 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수소환원제철공법 개발이라든지 수소연료전지선박 개발 같은 고난도 R&D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국가차원에서 실패리스크를 줄여주었으면 한다. 예컨대 반도체·밧데리·백신 등의 국가전략기술에 준하는 세액공제혜택(최대 40~50%)을 부여하면 좋겠다.
많은 기업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게 크레딧을 제공하는가 하면 취약계층에 적합한 적정기술 제품을 개발하고, 극소수 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성 없는 제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이 같은 활동에 대해 사회가치를 측정해 프레스티지나 세제상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어떨까? 정부가 세금을 거둬 복지사업을 펼치는 것보다 기업들이 보유역량을 활용해 사회가치경영을 펼친다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기업들의 공익사업이 활발해지는 풍토는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지속가능성장의 올바른 해법 … 과학자정신에 입각한 패러다임 쉬프트를 기대하며]

역대정부들은 출범 때마다 지속성장을 위해 많은 아젠다를 제시했고, 구체적인 해법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문제는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고,신산업과 서비스산업 발전 같은 신성장동력 창출문제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와 사회간 선순환 고리가 약해지고, 산업계와 교육부문간 미스매치
현상도 여전하다. 최근 복지 수준이 높아졌지만 경제부문에서 지속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강화하기도 지속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지속성장을 위한 올바른 해법을 도출해야 할 때다. 각각의 부문이 자신들의 입장만 강변하는 의사소통상황에서 벗어나 국가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탐구하는 등 과학자정신이 발휘되는 의사소통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와 팩트에 입각한 정책결정의 토론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 진실이 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경제계는 지금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며 기업의 새로운 역할과 신기업가정신을 모색 중에 있다. 기업의 자발적 변화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국가사회의 다른 부문의 화답과 변화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10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현재를 반성하고, 지속성장이 가능하도록 변해야 한다. 지금 당장.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