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와 기업시민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

2018년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포스코센터에 ‘테라로사TERAROSA 포스코센터점’이 문을 열었다. 1995년에 세워진 포스코센터는 대부분 업무용 공간이지만, 그동안 일반 시민들의 휴식 및 문화공간으로 아트리움, 스틸갤러리, 아쿠아리움, 미술관 등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서점과 푸드코트 등의 기능을 아우르는 초대형 카페가 들어선 것이다. 포스코의 상징인 철과 1만여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은 어떤 점에서 포스코센터 건물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고, 포스코 직원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강남 혹은 서울의 명물이 되어가고 있다.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 개장은 목이 좋은 서울 강남의 요충지에 또 하나의 대형카페가 들어선 것 이상의 의미로 읽힌다. 왜냐하면 포스코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채택한 ‘기업시민’ 경영이념과 묘하게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기업이 시민의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것이 ‘기업시민’ 개념의 요체라면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은 그것의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 아닐까 싶다. 이는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카페가 유럽에서 시민  혹은 시민사회를 탄생시킨 핵심 무대였기 때문이다. 커피는 이성과 합리주의, 계몽주의 시대에 부응하는 최적의 음료였고,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공론장이기도 했고 도서관이기도 했고, 대학이기도 했고 사업장이기도 했다.

또한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은 회사나 공장과 같은 직장과 사람들의 생활공간 사이의 구분과 경계가 허물어지는 최근의 추세를 반영하기도 한다. 공장은 예전처럼 높은 담장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과 같은 모습으로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오피스 또한 목하 공간혁명 중이다. 오늘날의 기업환경은 주어진 업무를 특정 장소에서 수행한다는 고정관념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비고정 유목민 사무실이 늘어나는 가운데 건물이 아닌 도시 전체를 업무공간으로 계획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디지털 정보통신혁명 시대를 맞아 인간의 창조적 사유와 주체적 판단이 장소를 불문하고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는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직주분리 자체의 의미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은 포스코와 세상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문지방 공간’liminal space일지 모른다.

 

시민의 마음

시민은 천부적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이 한편으로는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재不在한다. 법적·제도적으로는 시민이 존재하나 사회·문화적으로는 아직도 자격 미달 혹은 역량 부족이라는 의미에서다. 시민이란 우리의 전통적 심성 속에 없던 개념이며, 서구에서도 그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시민의식은 한편으로는 개인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주의에 바탕을 둔다. 유럽이 근대의 여명기에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탄생시킨 것은 역사적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인간의 존재는 그 자체가 절대적이어서 타인에 대한 의존이나 타인에 의한 강요 없이 혼자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진다는 사실은 그 이전까지 사람들이 가족, 혈연, 지역, 종교, 종족 등 집단의 구성원으로 불평등하게 살아왔던 것과 혁명적일 만큼 대조적이다.
한편, 공화주의는 개인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개인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해체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 신장을 위해 각 개인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힘은 사회적 압력이나 정치적 강제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와 자발적 결사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크든 작든 무언가 배려하고 희생하는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도 이익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공화주의는 공동체주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공동체주의가 공동선에 대한 사회적 의무를 강조한다면, 공화주의는 공공선에 대한 자발적 기여를 개인의 선택이나 권리로 인식한다. 결국, 공화주의는 개인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보완이자 확장이다.

 

‘제3의 장소’ 카페

유럽에서 개인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은 신神과 독대하는 기독교 문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구원의 문제는 개별적이어서 삶도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자치도시의 탄생이나 부르조아 계급의 출현, 자본주의의 발전이 개인주의 심성의 보편화에 결정적으로 가세했다. 이와 관련하여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이른바 ‘제3의 장소The Third Place’다. 이 개념의 창시자인 올덴버그R. Oldenburg에 의하면 ‘제1의 장소’인 집, 그리고 ‘제2의 장소’인 직장이나 학교와는 달리 ‘제3의 장소’는 “정말 좋은 장소The Great Good Place”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회적 믹서social mixer’이자 ‘중립지대neutral ground’, ‘무대 영역staging area’을 의미하는 사람들 사이의 비공식적 만남 및 모임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화려하거나 호화롭지 않는 수수한 가구나 인테리어가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한다. 말하자면 그곳은 “집 바깥의 또 다른 집home away from home”이다. 올덴버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모든 위대한 문명은 나름의 제3의 장소를 갖고 있었다. 로마의 포럼, 파리의 카페, 런던의 펍, 피렌체의 광장,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독일의 맥줏집, 일본의 찻집 등이 그 보기이다. 오늘날에는 상업 시설이면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제3의 장소’가 크게 늘었다. 찻집, 서점, 미용실, 동네술집, 단골가게 등이 ‘제3의 장소’로 거론되는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카페다.
올덴버그가 주목하는 것은 카페가 무언가를 “마시는 곳”watering hole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볼 때 무언가 함께 마시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이완하고 경계를 해제하는 일종의 윤활유 내지 ‘사회적 성수聖水’social sacramental beverage다. 게다가 술집과는 달리 카페는 마시기는 마시되 취하지는 않는 장소다. 흥분과 각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함께 마시면서 카페에서 벌어지는 활동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대화다. 슐츠H. Schultz가 스타벅스를 창업한 것은 교외화와 자동차 문명의 확산 때문에 미국에서 급속히 사라진 ‘제3의 장소’를 복원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에 의하면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 나아가 “단순한 유통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다.

 

커피와 근대시민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의 근대사회를 만든 것은 커피의 힘이었다. 근대 이전 유럽인들은 차나 커피 대신 술을 가까이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알코올은 유럽인의 삶에 있어서 기호품이자 식료품이었다. 게다가 원산지가 아프리카인 커피는 이슬람 종교의 음료라는 인식이 강해 거부감도 심했다. 유럽에 커피가 처음 소개되는 계기는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금주운동을 동반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신을 맑게 하는 커피의 가치가 재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커피가 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싹트면서부터였다.
볼프강 쉬벨부시에 의하면 기독교 중심의 중세가 저물고 이성의 시대가 열리면서 커피는 “정신을 일깨우는” 음료로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커피가 정신을 깨운다고 믿는 것은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특히 커피는 그 무렵에 태동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친화력을 높였다. 중세 농업사회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야외나 노천에서 육체노동을 수행했다. 이런 경우 음주는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높인다. 이에 비해 자본주의는 노동과정 및 노동조직의 측면에서 긴장과 각성을 상시적으로 요구했다. 이때 커피는 카페인 효과를 통해 부르조아나 화이트칼러의 정신노동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육체노동자들의 노동규율을 강화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했다. 쉬벨부시의 표현을 빌면 “커피는 인체에 스며들어 합리주의와 프로테스탄트윤리가 이데올로기적·정신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화학적·약리적으로 완수”했다.
처음 유럽인들이 커피를 접할 때 그것은 집안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마시는 ‘공적’ 음료였다. 그러한 커피 판매공간이 바로 커피하우스 곧, 카페였다. 사람들은 아침에 외출하여 커피를 보란 듯 사서 마신 것이다. 유럽에서 커피하우스가 첫 선을 보인 곳은 영국 런던이었다. 1650년 대학도시 옥스퍼드에 유럽 내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머지않아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프랑스 파리에 최초의 카페가 등장한 것은 1686년이었고, 1750년까지 600여 곳으로 증가했다. 카페문화의 진수는 1730년대 빈이 누렸다. 합스부르크 공국에서 카페는 사회 최하층까지 침투했다. 빈 시내에 있던 80여 개의 커피하우스는 시민들의 새로운 하이마트, 곧 고향이 되었다.
커피가 마지막으로 정복한 곳은 맥주가 끝까지 저항하던 독일이었다.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것은 1732년 무렵이었다.
커피하우스는 런던시민의 집이 되었고, 커피하우스 출입은 진정한 영국 신사의 조건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파리에서도 카페는 행복한 생활혁명 공간으로 치부되었다. 합스부르크 공국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치하 빈의 시민들은 커피 마시는 일에서 일종의 쾌락을 느꼈고, 독일에서도 카페는 답답한 일상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한다. 볼프강 융거에 의하면 커피가 일상화된 18세기 이후 유럽에는 관습의 대변화가 일어났다. 바로크(남성적, 중후함과 화려함)의 시대가 가고 로코코(여성적, 가벼움과부드러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무렵 사람들이 가장 즐겨 쓴 말은 ‘철학적’이라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카페는 어떻게 근대시민, 근대문명을 만들어냈는가? 톰 스탠디지에 의하면 카페는 이성의 시대가 열릴 무렵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다. 사람들을 지식과 정보로 연결시켰다는 의미에서다. 스타벅스의 고향인 미국의 시애틀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본사가 있다는 점도 우연치고는 재미있다. 당시 카페를 즐겨 찾은 사람들 가운데는 과학자, 지식인, 정치가, 사업가, 금융인 등 ‘정보노동자 information workers’가 많았는데, 과학과 상업의 결합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으로 자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카페에서 산학협력이 일어난 것이다. 18세기 유럽의 카페는 지식의 보고이자 전파 무대였다. 당시 커피값 1-2 페니 정도만 지불하면 세상을 배울 수 있다는 뜻에서 카페는 ‘페니 대학the Penny University’으로 통했다. 출판혁명 이후 카페에는 신문과 잡지, 문예물 등이 가득했고, 그와 같은 지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대화하고 토론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부르조아의 공론장으로서 카페의 역할에 주목했다. 국왕 즉위식이나 장례식, 로열 웨딩, 공개처형 등 전근대사회의 과시적 공론장이 권력자에 의한 일방적 공론장이었다면 부르조아가 애용한 카페는 이성적 논쟁을 통해 공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핵심 무대가 바로 카페였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모두 카페에서 시작되었고 의회와 정당의 기원 역시 카페다. 카페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도 없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프랑스혁명이 시작된 곳도 카페였다. 카페는 살롱이나 술집과 격이 다르다. 술집이 주로 프롤레타리아의 단결과 집단주의의 무대라면, 카페는 합리성과 냉철함, 그리고 개인주의로 무장한 교양시민의 무대다. 살롱이 귀족주의와 가깝고, 음주문화가 노동자계급과 가깝다면 커피문화는 태생적으로 시민사회 편이다.

 

한국의 카페문화와 포스코

한말에 서양 선교사들과 외교관들을 통해 커피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래, 1950-70년대 ‘다방 커피’ 시대와 1970-80년대 ‘믹스 커피’ 시대를 거쳐,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커피 제국으로 질주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1인 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353잔으로 세계 평균 132잔의 3배다.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선호하는 음료는 단연 커피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들이 커피를 집 아닌 카페, 곧 커피전문점에서 많이 마신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커피전문점 매출액 규모는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2019년 현재 커피전문점은 전국적으로 약 71,000개가 있고, 하루 38개 정도의 커피전문점이 새로 문을 연다고 한다.
향후에도 카페의 증가추세는 멈추지 않을 공산이 높다. 비혼非婚이나 고령화 등에 따른 1인 가구의 급증, 심화되는 주거난이나 취업난 등은 생활의 오아시스, 도시의 사랑방으로 카페가 수행하는 역할을 배가시킬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카페는 다목적·다기능 융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순히 차를 마시거나 사람은 만나기위해 그곳을 찾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카페에 간단한 회의실을 설치한 곳도늘고 있으며, 작은 사치small luxury를 즐기거나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카페 공간을 찾는 이들도 꽤 있다. 카페가 전시공간이나 공연공간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에는 ‘카페 난민難民’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충전 콘텐츠 사용이 용이하고 무료 와이파이까지 이용 가능한 데다가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카페는 시민정신과 여러 가지로 궁합이 맞는다. 일단 그곳은 원칙적으로 만인이 평등하고 입출입이 자유로운 곳이다. 각자의 취향은 물론 카페 각각의 개성도 비교적 존중된다. 지불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정한 공간과 일정한 시간에 대한 사유화가 가능하다. 오늘날 카페 공간을 상징하는 라운드테이블roundtable은 ‘함께 그러나 따로’라는 시대정신에 곧잘 부합한다. 요컨대 한국의 카페는 개인의 탄생, 자발적 친교, 보편적 타자와의 교류, 사회적 공론의 활성화, 사회자본의 축적, 문화자본의 배양, 창조자본의 발아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제3의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찍이 옛날식 다방이 못했던 일, 한국식 술집문화가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희망도 ‘거대담론’meta-discourse이 충돌하는 광장이 아니라 ‘가벼운 대화’small talk가 풍성한 카페에 있을지 모른다.
포스코가 ‘기업시민’을 경영이념으로 내걸던 2018년,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의 문을 연 것에는 나름 선견지명이 있어 보인다.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은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포스코 발發 ‘시민 대학’일지 모른다. 파리는 센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는데, 유명 카페들은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파리지앙들은 북쪽La Rive Droite은 소비하는 곳, 남쪽La Riva Gache을 생각하는 곳으로 여긴다. 기업시민을 화두로 내세운 포스코가 차제에 카페를 통해 생각하는 시민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어떨까.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