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혁신성장 전략

 

 

 

 

기술패권 경쟁 시대의 과학기술 강대국

COVID-19 팬데믹은 글로벌가치사슬GVC 재편을 촉발하였다. 이면에는 초강대국 미국과 G2로 부상하는 중국 사이의 갈등이 있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은 기술냉전tech cold-war이라 불릴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면서 산업경쟁력과 기술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와 함께 안보와 경제의 커플링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기술패권 경쟁의 구도에 다른 주요 산업국들이 얽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소위 기술주권technology sovereignty론이 부상하고 있다.
5월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종래의 개발도상국형 추격 전략을 폐기하고 과학기술선도국가 전략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연구개발총투자GERD 규모 세계 5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지출 세계 1위의 양적 수준에 걸맞는 혁신생태계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추진하여 과학기술 강대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 신종 감염병, 고령 사회와 같이 인류가 직면한 거대 난제grand challenges에 대응하는 등,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임무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개발 및 혁신창출 활동을 재구조화하는 임무지향 혁신정책mission-oriented innovation policy을 펼칠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은 환경규제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사회기술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을 재생에너지 기반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transformation해 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기술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모든 기술시스템의 전환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수적이다. 사회기술적 실험 수행을 포함한 전략적인 이행 관리transition management도 필요하며, 이행 과정에서는 새로운 차원의 산업정책이 필요해진다. 각 산업부문에서 탈탄소 기술을 개발, 적용하고 에너지 사용량을 저감하여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혁신성장 전략을 제안한다.

 

다섯 가지 전략

첫째, 전략적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한국은 블룸버그 혁신지수Innovation Index 세계 1위로 평가되는 우수한 혁신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런 평가는 양적투입에 힘입은 것이다. 이제는 연구개발과 혁신의 질적 성장을 이룩해야 한다. 기초과학 역량을 갖추는 것은 물론,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서 기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략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투자는 과감한 규모로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민간 파트너십을 통해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에 대비해 공급망을 점검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거듭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각국은 제조업을 비롯한 강건한 산업 포트폴리오와 안정적인 제조업 일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 혁신으로 등장한 플랫폼 산업, 그리고 전통적인 제조업의 스마트화를 통한 고부가가치화는 선진 주요국들의 관심을 제조업 부흥으로 돌려놓았다. 팬데믹이 강제한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은 제조업 오프쇼어링off-shoring 시대를 끝내고 핵심적인 사업장을 자국 내에 두는 리쇼어링re-shoring으로 선회하는 기업과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제조업의 에너지 이용에서의 탈탄소화 요구도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경직된 성과주의와 강한 규제 시스템으로 인해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주저하고 있으며, 스마트, 친환경, 융복합과 같은 메가트랜드에 대한 대응 역량도 부족하다. 이는 도전보다는 유지를 기조로 전략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근래 10년 간 신산업이 부상하지 않아 10대 주력산업 순위에 큰 변동이 없고, 제조업 부가가치율의 향상도 크지 않다. 제조업의 디지털화와 탈탄소화를 위해 스마트 제조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제조업 에너지 효율 향상, 청정생산과 이를 위한 공정혁신, 탈탄소화와 같은 세부목표 달성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산업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현장 인력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스마트화에 따른 직무의 변화에 대응하는 재교육 및 평생학습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관점에서 혁신의 원천과 혁신 창출의 경로를 다양화하고 여러 혁신 주체간의 협업을 촉진해야 한다. 기업이 내부 R&D를 혁신의 주요 원천으로 삼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대학, 사내벤처, 외부 스타트업, M&A 등으로 혁신의 원천이 다원화되고 있다. 혁신형 창업의 형태도 다양해져서, 모기업으로부터 스핀 오프spin-off한 스타트업, 대학의 연구실에서 시작하는 랩 벤처lab venture 및 대학기술지주회사 자회사, 정부출연연구소의 기술로 창업하는 연구소기업 등 외향형outbound 혁신 기업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급변하는 기술·사회 환경과 과학기술 고도화에 따라 새로운 과학지식의 획득에 소요되는 비용과 노력이 이전에 비해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이다. 연구개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그에 따른 위험부담도 증가함에 따라 기업 내부의 역량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혁신 주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창의성의 원천을 확대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혁신의 원천을 다원화하고 개방형 혁신 창출을 촉진하는 지원 체계로의 전환이 강하게 요구된다. 출연연·대학을 핵심 기반 기술 공급기지로 정립하여 범용 핵심 기술을 기업에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간의 R&D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기업과 대학, 연구소 사이의 네트워킹을 더욱 촉진해야 한다. 이들 사이의 협업은 개별 기술과제에 국한하기보다는 문제의 발견 및 정의, 해결책 제시, 비즈니스 모델 개발, 제품 및 서비스 전달 체계, 사업화라는 혁신의 전 과정에 걸쳐 작동해야 한다.
넷째, 재생에너지와 탈탄소 기술 개발 및 산업계에의 적용이 필요하다.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파리협정에 복귀하면서 국제 사회의 탄소중립 정책이 본 궤도에 올랐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전 세계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015년 24%에서 2050년 85%로 확대하려는 목표를 설정하는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계획을 펴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이 국제적 규범으로 정립됨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전통 산업부문의 탄소 저감 기술 개발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와 같은 고탄소 산업부문의 기업들은 에너지 사용량 저감과 더불어 저탄소 신공정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에너지 고소비 제조업이 여전히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원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유럽 주요 선진국 뿐 아니라 중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서는 발전부문의 재생에너지 발전원 확대라는 공급 측면 뿐 아니라 산업생산에 있어서의 에너지 수요 관리가 중요하다. 최근 에너지 고소비 산업부문에서의 전기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전력 사용량 저감 노력과 더불어 수요자 직접 발전을 지원하는 유인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화석연료는 에너지원일 뿐 아니라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의 중요한 원료이기도 하다.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 이산화탄소 환원, 플라스틱 재생과 같은 탈탄소 기술 개발, 공정 적용, 그리고 설비 전환노력이 필요하다.
다섯째, 디지털 전환의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특정 산업부문의 기술혁신을 넘어 전 산업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용기술의 특성을 가진다.
디지털 전환은 생산 부문에 대한 영향뿐만 아니라 소득, 소비, 고용 등 다양한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기에 경제·산업 부문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산업 분야는 물론 기존 산업부문들까지 디지털 기술에 의해 변화하는 상황에 발맞춰 세계 주요국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혁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디지털 혁신에 필요한 전략적 연구 분야에 투자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전략 분야에 대한 민관 공동투자와 중소기업 디지털화 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첨단 제조업과 ICT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을 구상하고 있으며, 일본은 자연재해 예방, 행정 효율화 등 사회문제 해결에 ICT 기술을 활용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중소·중견 제조업체에의 스마트 팩토리 적용을 중심으로 기존 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관련된 생산관리 소프트웨어 보급 등 계량적 실적에 치중하여 제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 향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디지털화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질적 개선의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개별 기업 뿐 아니라 상하류 유관기업을 포함한 가치사슬 전반에서 디지털화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마트 팩토리는 생산성 증가, 불량률 감소, 이에 따른 원가 절감, 나아가 맞춤형 생산에 따른 부가가치 증가 등의 이점이 있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 증가가 보장되지 않는 스마트 팩토리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 팩토리 도입의 실익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사업주들과의 소통과 설득에 나설 필요가 있으며, 디지털화를 위한 투자를 정부와 원청기업이 함께 지원하는 협력체계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화과정에서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이 계속 등장할 수 있도록 창업 및 스케일업 생태계를 개선하고, 신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들을 개폐해야 한다.

 

전환의 비용은 최소화, 기회로 삼아야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4차 산업혁명은 융복합적 성격을 가질 것이다. 새로운 범용기술인 인공지능의 확산과 디지털 전환이 촉발하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는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양대 전환dual transformation의 비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산업경제적,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질적인 생산과 연구개발의 주체인 기업들, 나아가 대학과 공공연구부문도 이러한 전략 방향에 발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