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대, 감축과 적응 제대로 가고 있는가?

 

 

 

 

[들어가기]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ning’를 들어보지 못한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탄소중립’이 필요하고 기업이 이에 동참하는 방안 중 하나가 최근 언론에 등장했던 RE100Renewable Energy 100%과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일 것이다. 2050년까지 대한민국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수천조원이 필요하고 신규 기술 개발에만 수조원의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보도를 보면 바야흐로 기업이 사활을 걸어야만 하는 ‘탄소중립으로 헤쳐모여 시대’가 다가온 것만은 틀림없다.
지구온난화는 사실Fact이다. 지난 150년 동안 지구의 온도가 꾸준히 증가하였음을 인류가 관측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원인이 온실가스Greenhouse Gas 과다 배출에 의한 ‘기후변화Climate Change’ 때문이라는 연관성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기후변화와 동격은 아니다. 기후변화는 (지구온난화의 원인까지 포함하여) 인간이 자연현상에 개입하여 기후를 바꾸게 되는 현상을 모두 통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만일 도시화 때문에 열섬 효과heatisland effect가 가속화 되었다면 이것도 기후변화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와 더불어 또 하나 혼동하기 쉬운 용어는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다. 온실효과는 지구만이 가진 혜택인데, 근본적 이유는 대기권에 존재하는 수증기 때문이다. 즉, 지구에서 방사되는 복사열이 수증기에 반사되어 지구로 다시 회귀됨으로써 지구가 현재 기준 15도 정도의 따뜻함을 유지한다는 그야말로 자연 현상이다. 문제는 여기에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폭증하여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 온실가스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이라는 양축으로 나누어 그 강조점을 서술하고자 한다.

 

[탄소중립, 잊어서는 안되는 사안들]

온실가스 감축은 전 세계적으로 ‘넷제로Net Zero’라고도 불리우는 ‘탄소중립’, 이 하나의 단어로 축약될 수 있다. 대한민국 탄소중립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앞으로 10년 동안 약 2.4억톤(= 40% x 2021년 총배출량 추정 약 6억톤), 즉 매년 2400만톤을 감축하고 그 후 2050년까지 20년 동안 나머지 3.6억톤(매년 1800만톤)을 감축하는 계획이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의 추가 건설 없이 현재 30% 수준의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2050년에는 6~7%로 줄이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여야 한다. 탄소중립의 정의와 의의 그리고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본 출간물에서도 최근 원고가 게재되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생략한다. 대신 시민단체 ‘바른 과학기술 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하 과실연, www.feelsci.org)’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과학기술인 33인의 목소리, 2050년 탄소중립 실행안의 실현 가능성을 진단하다’를 인용하면서 잊어서는 안되는 사안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과학기술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탄소중립 실행안의 수립이 다분히 사회과학자들 위주로 추진되면서 ‘과학기술적 분석은 실종되었다’는 문제 인식에서 과실연 설문조사는 시작된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산학연 과학기술 전문가 33인은 기계공학, 에너지공학, 전기공학, 재료공학, 화학공학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달성에 소용되는 예산의 추정, 세부 기술의 국내 개발 필요성, 무리하게 추진하였을 경우 문제점 등에 대한 질문이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답변 내용을 요약해보면, ‘예산이 충분히 투자되더라도 실현 가능성의 (전문가 33인에 걸친) 평균값은 약 60%’였고, ‘소요 비용을 최대 3000조’까지 추정한 전문가도 있었으며, 무리하게 추진하였을 경우 ‘단계적 전환 실패에 의한 산업 체계 붕괴’와 ‘안전 사고’를 가장 우려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탄소중립이 우리 인류가 반드시 가야 할 방향임에 틀림 없지만, 면밀한 과학기술적 분석이 실종된 선언적 의미의 ‘2050년 탄소중립’은 그저 장밋빛 꿈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2020년 12월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 2021년 5월 ‘탄소중립위원회 출범’, 2021년 8월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발표, 2021년 9월 ‘탄소중립 기본법 제정’, 2021년 10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 상향안’ 심의·의결, 그리고 2021년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대통령의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 천명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더욱이 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탈탄소를 이루겠다는 두 마리 토끼잡기를 주장해왔다. 차기 정부 출범을 계기로 이제라도 광범위한 과학기술인과 산업계의 참여를 통한 합리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야할 길이라고 해서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적응 전략]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 온도의 상승을 최대한 묶어 놓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미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인류는 이미 150년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기에 이제부터 시작하는 온실가스 감축의 결과가 효과를 보는데 수십년 이상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구 온도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 분명하니 기 확인된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국가에 있어서 적응 전략은 온실가스 감축에 비해 예산 투자나 추진 현황에 있어 많이 뒤쳐진 것이 사실이다. 감축:적응 예산이 10:1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과거 통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탄소중립’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면 적응에 상대적으로 소홀하지 않을까 더욱 우려되고 있다.
적응을 해야 하는 범위는 매우 넓다. 9월말이면 끝나던 태풍이 10월에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태풍으로 인한 홍수 대비 기간을 10월까지 늘려야 할지 검토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기후변화 적응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전염병 접종 시기의 조정, 재배 농작물의 교체, 해안 상승 대책의 개정, 단풍 관광 시기의 변경, 여름 의류 출시 조정 등 가히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 적응이다. 적응은 단지 피해를 줄이는 수동적인 의미를 넘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강조하고 있다. 즉, 기후변화를 ‘뉴노멀New Normal’로 정의하고 효과적인 적응 전략을 선제적으로 마련하여 상대적인 우의를 선점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에는 어떤 원칙으로 적응하여야 할까?
이에 앞서 우선 기후변화의 특징을 이해하여야 한다.
기후변화의 첫 번째 특징은 ‘비정상성non-stationarity’인데, 이는 평균이나 분산 등 변수variable의 통계량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뜻의 용어다. 시시각각 변하는vary 것이 변수이지만, 정상성stationarity의 세계에서는 그 통계량은 시간의 함수가 아니었다.
즉 매년 강수량 값은 변하지만 연평균 강수량(예를 들어 1300mm/년)은 일정하다는 가정 아래 수자원 계획을 세워 온 것이 지금까지의 방법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강수량의 평균값도 변하고 (즉,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평균과 더불어 표준편차까지 증가한다면 더욱 큰 일일 것이다. 홍수와 가뭄, 폭염과 한파,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등의 극치값들이 씨소seesaw처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양극단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capacity을 국가나 기업이 마련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성 시대에는 수십년 전의 사건이나 얼마 전 사건이 동일하게 중요하지만, 비정상성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최근의 사건이 먼 과거의 사건보다 훨씬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반대로 해석하자면 과거의 많은 사건들이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정책 결정에 사용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어려움에 늘 허덕이게될 것이다.
기후변화의 또 다른 특징은 ‘불확실성uncertainty’에 관련되어 있는데, 불확실성이 매우 클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가능성likelihood이나 확률probability조차도 알수 없는 ‘깊은 불확실성deep uncertainty’일 수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처하기 위해 다행히도 인류는 ‘확률론probability theory’을 발전시켜 왔는데, 가장 간단한 사례로, 확률로부터 기댓값을 계산하고 이를 가장 좋아지게 만들도록 대처하여왔다. 그러나 그 확률조차도 모른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아진다. 즉, 지금까지는 밝은 대낮에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기후변화 시대에는 어두운 밤에 길을 찾아야 하는 격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기업은 어두운 밤에서 길을 찾는 방법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비정상성과 불확실성으로 특정되어지는 기후변화 시대에 슬기로운 적응 전략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험을 분산시키는 ‘유연한flexible’ 적응 전략으로 가야한다.
나아가 조금 더 구체적인 키워드 두 개는 ‘강건성robustness’과 ‘민첩성agility’이다. 강건한robust 전략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실패가 가장 적은 전략, 즉 1등을 못해도 꼴등은 안하는 전략을 말한다. 반면 민첩한agile 전략은 시행착오로부터 배우면서 자신의 결정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나가는 환류형 전략이다. 정상적이고 불확실성이 크지 않은 상황 속에서는 강건하고 민첩한 전략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낭비에 가깝다. 왜냐하면 강건하고 민첩한 전략은 시간과 예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기후변화 시대에 슬기롭게 살아가려면 귀찮고 노력이 많이 들더라도 강건하고 민첩하게 적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의 모든 정책 방향을 이렇게 강건하고 민첩하게 바꾸어 기후변화로부터의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언제 어디서 닥쳐올지 모르는 더 큰 위험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