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시민과 상생적 노사관계

 

 

 

 

포스코 기업시민의 시대적 의의

서구의 선행연구에 따르면,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은 사회의 유력한 공적 주체인 기업들이 시민권·사회권·정치권 등의 기본적 권리를 존중하며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정의한다.(Dawkins 2010; Matten & Crane 2005; Wood and Logsdon 2001) 이같은 정의에 따르면, 기업시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공유가치CSV와 마찬가지로 기업들이 수익 추구에만 몰두하기 보다 시민사회의 구성원(‘시민’)으로서 공동체적 연대를 지향하여 공익적 역할과 책임을 자임하며 사업이윤과 사회적 후생을 동시적으로 성취하려는 착한 균형의 비즈니스모델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시민되기’로 이해될 수 있다.(송호근 외 2019) 기업시민이 갖는 시대적 의의를 살펴보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 과도한 수익경영으로 노동·사회·환경 분야에의 적잖은 폐해를 안겨준 기업들이 정당성 위기에 봉착하여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기업경영의 생태계 질서를 재구성하여 공공성의 복원과 사회적 가치의 확장에 이바지함으로써 호혜적인 지속발전 가능성을 도모하려는 ‘개명된enlightened’ 경영이념에로의 전환을 함의한다.(윤정구 2019)
포스코가 지난 1968년의 설립 이후 성장해온 지난 50년의 역사적 궤적을 돌아보면, 설립기(1968∼1992)·도약기(1993∼2010)·성숙기(2011년 이후)의 시대적 단계에 따라 기업 안팎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여 경영 이념을 적절하게 설정하여 구현해오고 있다.(Moon & Park 2017)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된 포항제철(포스코의 전신)의 초기 역사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기치를 내세우며 1970∼198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정책에 따라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튼실하게 뒷받침하는 공기업으로서 혁혁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민영화를 거쳐 건실한 경영실적과 탁월한 기술수준으로 국내외의 투자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세계 철강산업에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하였으며, 해외 생산기지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벌이면서 글로벌 경영체제를 구축-가동해오고 있다. 2019년 7월에는 기업시민헌장을 선포하여 미래 50년을 새롭게 포스코 차원의 사회적 가치 경영을 실천해나갈 것을 공식화하였다. 이처럼, 포스코는 지난 50년 역사를 통해 후진국 경제로부터 도약하려는 정부주도의 개발연대에서부터 국경 없는 치열한 시장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경제발전에의 기여와 세계 철강업계에의 위상 확보라는 경영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당시에 강조되던 경제적 가치의 실현에 주력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 포스코가 재무성과의 달성에만 안주하기 보다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 균열·해체와 환경문제 등과 같이 기업 울타리 밖에서 발생되는 위기징후를 대처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취지에서 기업시민의 경영이념을 정립하여 선언한 것은 새로운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려는 포스코 경영진의 결단으로 매우 주목할 점이라 평가될 만하다. 기업시민이 경제적 가치과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포용·존중해야 한다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는 포스코 차원의 미래지향적 경영이념을 집약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기업시민의 경영이념은 포스코가 창립 이래 자임 해온 ‘제철보국’의 국가적 책무 수행에서 넘어서 ‘여민보국與民報國’ 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지향점을 재정립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송호근 외 2019)

 

기업시민의 성공을 위한 노사관계의 조건

포스코 경영의 시대적 전환을 표명하는 기업시민의 실천과제들의 성공적인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룹 임직원, 특히 현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공감과 동참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송호근 외 2019) 직원들이 협조적인 동의와 적극적인 역할로 뒷받침하지 않는 경우에는, 기업시민이니 여민보국이니 아무리 훌륭한 경영이념이라 하더라도 경영진의 ‘공염불’에 그칠 뿐 포스코의 새로운 경영으로 현실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시민의 경영이념에는 People 영역에서 포스코그룹 임직원을 위한 주요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임직원들이 작업환경·인사관리·노사관계·근무체제 등에 있어 수혜대상이기도 하지만 비즈니스 파트너와 사회공동체에 대한 기업시민 경영의 실행주체라는 점을 분명히 유념할 필요 있다. 그런 만큼, 기업시민이 포스코 기업활동을 통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한 핵심적 성공요인으로 그룹임직원 모두가 새로운 경영이념의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주체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노동조합의 조직화가 이뤄진 최근의 노사관계 여건하에서는 두가지 필요조건, (첫째) 노동조합과의 협력적 파트너십을 확립-발전시키는 조건과 (둘째) 노조 스스로 사회적 책임의 실천을 공감하고 적극 동참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최고 경영진이 내건 기업시민의 경영이념이 조직 차원의 단합된 추진력을 얻어 힘 있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기업시민의 세부 실천과제로 ‘안정적 노사관계의 확보’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조를 기업경영의 걸림돌이나 갈등요인으로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직원들의 자발적인 결사체이자 대의기구인 노동조합이 경영진과 “더불어 함께” 협력하고 실천하는 공존·공생의 미래지향적 노사관계를 확립하여 성숙시켜가는 것이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의 새로운 포스코로 바꿔가려는 경영진의 혁신의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결사체라는 점에서 권익 대변과 보호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상이한 활동성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조합원들의 권익 대변에만 치중하는 실리주의적 노조운동에서부터 노동자계층의 권익보호를 지향하는 사회개혁적 노조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조직율이 하락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속에서 사회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노조가 조직 내부자, 즉 조합원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함에 따라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일터 인권·법규준수·노동참여·산업안전 등을 보장하는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와 더불어 취약노동계층의 권익대변을 지향하는 경제적 형평성economic equity과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노조의 사회적 책임으로 구현해야 할 핵심 가치영역으로 설정하기도 한다.(Dawkins 2010)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경우에는 기업별 노조활동의 관행이 지배적이다보니 아무래도 조합원들의 이익대변에 치중하는 실리주의적 경향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대다수의 노동조합들이 기업별 노조체계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며 조직 내부자인 조합원들의 권익 개선에만 열중할 뿐 노조 밖에 놓인 취약노동자들의 형편에는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경우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이나 하청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이나 청년들의 구직난문제를 방치한 채 조합원들의 실리, 즉 그들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에 주력하는 활동에만 매몰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조직-미조직 노동자 들간의 격차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에 방조하여 연대성 위기의 나락에 빠져들었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이병훈 2018) 그런 가운데, 일부 노조들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려는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어 세간의 큰 관심을 받기도 하였는데, LG전자노조의 USR활동을 비롯해 보건의료노조와 SK Hynix노동조합이 각각 비정규직과의 차별해소와 하청업체와의 임금공유를 실천하려는 상생적 연대의 노사협약을 체결한 사례를 손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노동조합들이 사회취약계층을 보듬어 돕기 위한 사회연대기금의 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양노총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공공상생연대기금재단, 사무금융노조들의 우분투재단, 금융노조의 금융산업공익재단, 희망연대노조가 주도한 희망씨 사단법인 등이 그에 해당된다.
요컨대, 유노조의 사업장여건하에서 기업시민경영의 능동적인 실천을 도모함에 있어 노사관계의 안정화에 안주하기 보다 가치창출과 사회적 책임의 노사관계로 발전시켜나갈 필요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기업시민 경영활동의 선도적 실천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상생적 파트너십을 확립하는 것이 경영진의 전략적 과제로 설정될 필요 있다.

 

포스코의 상생적 노사관계를 위한 제언

포스코의 지난 50년 동안 눈부신 성장의 역사를 일구어온 배경에는 ‘제철보국’의 국가적 소명을 성취하려는 노사합심의 헌신적 노력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스코의 성공신화와 관련하여 협동정신과 상호신뢰, 생산성연합, 고몰입 일터와 행복직장 등으로 노사관계와 관련된 긍정적인 평가가 제시되는 한편,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의 군대식 병영통제와 그 이후 노조탄압과 위계적 조직문화 그리고 사측 주도의 무노조경영 등을 문제 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금속노조 2004, 이주환 2020, 송호근 2018) 이처럼, 포스코 노사관계는 기업 성장의 역사와 함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떠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기업시민의 경영방침 선언에 의해서, 그리고 복수노조의 등장을 통해서 기존의 포스코 노사관계는 피할 수 없는 전환점에 놓여 있다. 복수노조시대를 맞이하여 지난 2년 동안 심각한 노사분쟁 없이 다수노조와의 단체교섭을 무사히 마침으로써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수노조체제하에서 포스코의 기업시민 경영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가치창출의 노사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는 만큼, 이를 위한 몇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노동조합이 포스코의 기업시민 경영에 대해 협력적인 실천의 주체로 나설지, 또는 조합원 실리에만 치중하는 방관자로 머무르거나 경영진에 맞서는 대항조직으로 행동할지의 여부는 노사관계에 대한 경영진의 인식태도에 달려 있음을 유녀해야 할 것이다. 대립적 노사관계가 조성되는 경우에는 기업시민경영이 현장 조합원들의 무관심과 비협조에 부딪쳐 회사 윗분들만의 공허한 캠페인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업시민의 경영이념이 포스코의 조직문화와 사업관행으로 안착하여 발전적 성숙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안정화를 넘어서 기업경영의 핵심 이해당사자이자 실행주체인 종업원들의 자발적 결사조직인 노동조합을 협력적 파트너로 인정-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경영진 불신을 초래할 수 있는 노조활동에의 부당한 개입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기업시민의 경영이념에 맞추어 사회적 책임의 노사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전략적 접근이 요망된다. 기업시민의 경영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관리적 안정화를 넘어서 사회적 가치 창출의 노사파트너십으로 선진화시켜 나갈 필요 있으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중장기의 노사관계 발전전략 및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이 요망된다. 또한, 노사파트너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노사관계업무에 전략기획의 기능과 권한을 부여하는 위상 제고와 인재배치로 격상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 경영진의 전향적인 인식변화만으로는 기업시민 경영을 위한 노사파트너십이 성취될 수 없고, 결국 노조 지도부의 적극적 협조와 동참으로 완성될 수 있다. 그런 만큼, 노조가 ‘우물안’의 운동논리 또는 속좁은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도록 회사 경영이나 사회적 가치 등에 대한 폭넓은 정보 공유와 일상 현안에 대한 노사협의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상호 신뢰관계를 지속적으로 쌓아나가야 하겠다. 또한, 노조 지도부가 사회적 가치/책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갖출 때 기업시민의 노사공동 실천에 적극 동참할 것이므로 노조 간부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가치과 책임에 대한 다양한 교육기회의 마련-제공을 촉진-지원하는 것이 요망된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