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시민행동의 현황과 전략적 방향

 

 

 

 

기업의 존재 이유

“기업이라는 존재는 누가 만드는가?” 이는 기업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존재론적ontology 관점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질문이다.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경영학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업가entrepreneur의 존재로 제시하였고, 이들을 조직 내·외부적으로 가용한 자원을 동원하여 기회Opportunity를 현실화시키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근본적으로 ‘기업이라는 존재는 무엇이며 그 목적은 무엇일까?’
이는 굳이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의 공기를 맡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은 당면해 본 질문일 것이다. 이에 대한 원론적인 답은 ‘이윤 창출과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몰론 간혹, 사회문제 해결, 고용창출, 사회적 영향력 행사, 국위선양 등의 ‘오답’을 내놓는 이들이 있어 주위를 ‘당황’스럽게 하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기업을 만드는 주체는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기회를 현실화시킴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이고, 기업의 존재 목적은 경제적 가치, 즉 이윤 창출이며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것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기업이라는 주체의 급격한 팽창과 사회라는 시스템 내에서의 역할과 영향력 확대,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윤이외의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탄생을 지켜보게 된 우리는 이러한 기업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인식론적epistemology 관점의 대두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물론 기업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핵심적인 부분이나, 이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 인식이 과거와 달라졌다면 기업의 존재 목적으로 이윤 창출만을 꼽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것은 자명해진다. 즉 과거에는 ‘오답’으로 여겨졌던 키워드들이 적어도 복수 정답으로  인정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인식론적 논의가 변화해온 것은 본디 기업은 급변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고 하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즉 살아있는 주체로서 기업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필요로 하고, 그 과정에서 존재 자체에 대한 인식도 바뀐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ism에 기반하여 기업의 궁극적 존재 지향점을 그 ‘주인’인 주주가치만을 고려하면 충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기업이라는 주체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활동을 해 나간다는 중요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되었고, 이는 곧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ism로 탈바꿈하게 되어 기업의 내부뿐만 아니라 내·외부 이해관계자와의 협력적 관계가 기업의 생존을 가능케 한다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나아가 최근에는 생태계나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과거 상충적으로 바라보았던 수익성과 환경보호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성이 커지며 생태계 자본주의ecoholderism가 대다수 기업의 고려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다.

 

기업시민, 너 누구냐?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기업의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논의는 이미 반세기 전에 시작되었고, 특히 최근에는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의 궁극적 목적마저 도전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 기업이 가지는 존재의미와 정의,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역할정립은 기업의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너무도 다양하고 혼재된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다. 가령, CSR의 행위가 자선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것인지,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반응이 수동적인 것인지 아니면 능동적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 활동의 동인이 기업 스스로인지 외부 (최근의 경우 UN, OECD 등 국제기구까지 포함)인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는 합일되는 것인지, 인간 활동의 궁극의 목적인 행복의 주체는 누구인지 등 혼재된 논의와 개념이 난무하면서 기업이 가지는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어쩌면 CSR, 지속가능경영, 사회적 가치, 기업시민 등 논의되고 있는 여러 개념들은 모두가 연계성이 깊은 개념이니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기업이라는 존재의 인식을 명확히 하는 것은 그 중요성과 영향력이 증폭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업과 관련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기에 이에 대한 명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코가 지향하는 ‘기업시민’이라는 개념은 기업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 관점에서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고 평가될 수 있겠다. 시민으로서의 기업은 시민으로서의 개인과 마찬가지로, 권리와 의무를 지니며 개체의 이익을 추구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이익을 좇는 사회의 일원이라는 일원론적 인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시민의 구현을 위해서는 몇 단계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우선 기업시민은 사회에서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업의 지향점과 가치관을 끊임없이 사유하는 모습을 띄어야. 마치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 올바른 시민의 모습이란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즉, 개인의 가치관을 고민하는 철학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 이를 위하여 기업시민은 사회라는 환경 내에서 끊임없는 사유를 통하여 그 역할과 미션 및 비전을 명확히 하는 기업시민의식을 정립하는 것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다음은 이렇게 확립된 기업시민 관점이 조직의 철학과 전략 나아가 모든 단위업무에 얼마나 내재화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고경영진의 리더십은 물론이고 조직의 가장 말단까지 기업시민활동을 얼마나 주요한 비즈니스 활동으로 여기고 체화되어 가는지를 관리해야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기업과 관련되어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대응을어떻게 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찰을 통한 수정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포스코가 나아가야할 기업시민의 방향도 이와 같을 것이다. 기업시민활동의 제1원칙인 문제의식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가 최우선으로 필요하다. 끊임없는 문제의식에 대한 사유를 통해 기업시민의 범위와 정의를 확립하고 조직 전체의 기업시민 문화를 전파하여 CSR 전담부서가 아닌 모든 부서와 일원이 하나로 움직여야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해결 이후 꾸준한 관리감독을 통해 사회의 요구를 즉각 반영하여 재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치가 실현되며 과정의 반복은 가치를 증폭시켜 나가며 기업시민으로서의 진정성과 가치는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시민 활동과 범위

그렇다면 기업시민적 활동과 범위는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즉 기업시민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시민으로서의 첫 출발점인 존재 이유과 가치관에 대한 사유의 모습이고, 기업이라는 실체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의 핵심이기에 가장 근본적인 논의라고하겠다. 이를 파악하기 위하여 필자와 연구진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시민적 활동이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활동의 범위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는 기업의 사회와의 관계가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논의가 아닌, 실질적인 행동으로 현실에서 구현되는 활동을 분석하여 기업시민적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의 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기업들의 ‘시민성 활동’을 객관적으로 공표하는 내용은 기업마다 발표하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유일하다. 이는 기업의 재무적, 비재무적 성과 및 영향 등의 모든 정보를 담은 것으로 기업의 경영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부문으로 구분하여 이에 대한 정보를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에 대한 법제화가 이뤄지고 있는 추세에 따라 영국, 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는 보고서 발간을 법으로 이미 의무화하였다. 2017년부터는 유럽연합EU 또한 제도 내 종업원 500명 이상 기업들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였으며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도 상장기업의 보고서 발간을 의무화하고있다. 국내에서도 2013년 의무화 법안이 최초 발의된 후로 이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고, 2003년 포스코, 현대자동차, 삼성SDI를 시작으로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 및 공공기관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자체는 기업 내부에서 작성되며 외부 검증 기관을 통해 거짓 없이 투명하게 보고했는지 제3자 검증을 통해 진행된다. 본고를 위해 필자와 연구팀은 가장 신뢰할 만한 평가로 꼽히는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지수DJSI, Dow Jones Sustainability Indices를 기준으로 지속가능경영 우수 기업을 선정해 그 기업의 보고서를 분석하고 있다. 그 내용 중 특히, 기업의 이해관계자로부터 여러 주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후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력 정도를 가지고 만든 중대성 이슈 매트릭스를 통해 지속가능경영 핵심이슈를 선정하는 ‘중대성평가materiality test’라는 부분에 맞춰 분석을 진행하고 있고, 여기에서 그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대성평가에 대한 분석은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현재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인식의 내용들을 파악하게 하여 기업시민에 대한 고민과 내용들을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보고서 발간시 참조하게 되는 GRI 가이드라인Global Reporting Initiate Standards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어젠다들 (non-GRI 이슈) 까지 파악하게 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선제적인 기업시민 행동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즉, 기업이 인식하고 있는 기업시민활동의 정의와 범위, 그리고 그 흐름을 파악하게 하고, 나아가 현재 시점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표준적인 가이드라인으로서의 기업시민적 행동의 범위를 넘어선 우리나라 기업이 인식하고 있는 중요한 기업시민적 가치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기업시민이라는 주체의 존재론적 정의를 가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포스코가 추진하는 기업시민의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의 분석은 2019년에 DJSI World에 선정된 19개 기업과 2018년에 선정된 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1 초기분석 결과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기업마다의 핵심이슈들이 큰 특징 없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이러한 모습이 산업별로도 큰 차이가 없다는 점,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 리스크 관리와 규제 대응, 고객만족, 고객중심경영과 같은 핵심 이슈들이 기업마다 굉장히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분류가 되어 있고, 사회공헌의 범위 역시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몇 가지 차원에서 시사점을 준다.2 우선 기업별·산업별 큰 차별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기업들의 기업시민적 활동들이 지나치게 일반화되어 있고, 기업이 처한 각 상황마다의 본질적인 도전들을 차별적으로 보이고 있지 못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기업시민 활동을 객관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GRI 가이드라인자체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 기업시민의 정의에 관한 인식론적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즉 시민이라는 살아있는 주체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기업으로서 추구하는 목적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보다 세부적이고 명확하게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환경 및 사회와의 지속적인 인터액션을 통해 기업시민으로서의 지향자체를 보다 유연하게 하며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사회 변화와 함께, 비재무적 정보에 대한 중요성과 요구가 확대되면서 핵심이슈가 아니었던 이슈가 중요 이슈로 떠오르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동반성장 및 상생협력 이슈 중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독립되어 등장할 수 있고, 현재는 청년고용 문제로 고용에 대한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10년 후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과 청년인구 감소 문제는 고용의 양보다는 질에 대한 이슈가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급격한 출산율 감소로 인한  인구절벽과 고령화 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고민하지 못해본 새로운 이슈를 불러올 것이다. 이는 이슈의 선제적 인식과 해결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2년 동안의 분석은 이런 모든 지속가능경영에 관한 위기를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에 대한 이슈가 많은 회사에서 관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나치게 일방적인 접근은 조직 내의 성원자체의 시민성을 훼손할 수 있고, 또 지나친 방임은 기업시민으로서의 일관성을 저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맺음말

요컨대 포스코의 기업시민은 더 포괄적이고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 차원을 바라보며 근원적인 변화와 문화혁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다른 기업처럼 지속가능경영의 비재무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주요 이슈로 여겨지지 않던 이슈의 부각을 기민하게 인지하고 적절한 기업시민활동을 통해 모범적 기업시민으로의 역할을 실천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 즉, 변화하는 이슈에 대한 선구안을 기르고 문제의식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견인해야 한다. 이러한 주도적인 기업시민 활동을 반복하는 과정속에서 포스코는 시민사회 내에서 암묵적인 기업시민으로의 선구자적인 지위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시민들 사이에서 올바른 선도적 기업시민으로의 헤게모니hegemony를 쥐게 될 때 포스코가 꿈꾸는 제대로 된 기업시민의 탄생이 가능할 것이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