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업의 조건: 존재목적Purpose 추구와 딜레마 해결

 

 

 

*이 글은 포스코경영연구원 기업시민연구실 보고서에 기반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기업의 미래모습에 대한 최근 트렌드

지난 200년간 기업경영의 대大전제였던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파행과 한계에 대한 반성을 계기로 기업의 존재목적을 재성찰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9년 8월 미국의 BRT1는 주주 우선주의가 아닌 이해당사자 모두를 위한 새로운 기업경영을 선언하면서, ‘고객들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직원들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며, 공급업체를 공정하게 대하고, 지역사회를 지원하며, 마지막으로 주주를 위한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본질적인 사명Mission이라는 데에 합의를 이루었다. 영국의 Financial Times도 최근 자본주의 재정립과 미래기업의 조건에 대한 특집기사를 연재2한 바 있는데, 프리드만 독트린3에 기반한 지금까지의 기업경영은 심각한 외부불경제4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기업이 스스로의 존재목적을 전제로 한 목적 자본주의Purposeful Capitalism를 추구하도록 기업의 역할, 구조, 행태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을 경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본이 금융자본Financial Capital이었기 때문에 이를 투입하는 주주와 투자자가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이고, 이들에게 이윤을 돌려주는 것이 경영의 목표가 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금융자본외에도 인적자본Human Capital, 자연자본Natural Resources,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확보하는 것 또한 기업 경쟁력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자본들을 투입하는 직원, 환경, 사회 등 내외부 이해관계자 전체가 모두 중요하며 기업은 이들 모두를 위한 Profitable Solution을 창출하는 것을 경영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목적Purpose에 기반한 경영체계Re-align

옥스포드 경영대학원SAID Business School의 콜린 메이어Colin Mayer 교수는 저서 “Prosperity”5에서 기업의 존재목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존재목적은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며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마음과 행동을 견인한다고 주장한다. 존재목적은 조직의 전략을 이끌고 구성원에 동기를 부여하며, 고객의 충성과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윤Profit은 존재목적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우수한 경영성과를 보이는 선진기업들은 대부분 회사의 본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존재목적을 설정하고 있다. 그림 2와 같이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본업이 속한 산업계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미래를 위한 제품을 개발하며 고객의 행복과 건강을 돕는 등 업의 특성과 자사의 핵심역량을 반영한 구체적인 목적을 설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존재목적을 충실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체계를 구성하는 S-C-P 프레임워크도 재정렬이 필요하다. 기업은 조직구조Structure와 행동방식Conduct의 조합 및 상호작용을 통해 경영성과

Performance

를 이루어내는데, 과거에는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재무적 성과 달성에 최적화된 조직구조와 행동방식을 셋팅했다면 이제는 존재목적을 염두에 두고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S-C-P 관련 제도나 시스템, 성과평가 등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회사의 모든 활동은 본업 및 본업과 밀접하게 연계된 존재목적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기업과 사회 양쪽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화여대 윤정구 교수도 최근 “업의 본질과 관련된 일에서 착함을 펼치는 것이 기업시민행동본질”6이라고 한 바 있다.

 

딜레마 타개를 위한 초민감 균형

기업의 존재목적에 맞추어 경영 목표와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기존의 패러다임을 한순간에 완전히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오히려 그 동안의 방식, 관행과 여러 측면에서 상충하는 딜레마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존재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단기 실적 및 이윤과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포함한 장기 이윤간에 상충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기업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딜레마 상황에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초민감 균형Super-delicate balance의 적절한 지점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회사 내에서 이런 민감한 의사결정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조직에서 감당할 수 있는 변화의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 ▶주주 및 자본시장과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등이 대표적인 난제라고 할 수 있는데,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데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글로벌 3개 기업사례와 시사점

Novo Nordisk는 약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을 공급해 온 세계적 기업인데, 회사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가 상충하는 패러독스 상황에 놓여있다. 사람들이 당뇨병을 극복하고 치료제 없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면 회사 제품인 인슐린 수요가 오히려 위축되는 카니발라이제이션Carnivalization7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Nordisk는 회사의 존재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재단형 지배구조를 도입하여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는 것으로 그 해법을 찾았다. 기업이 아닌 재단이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면서 기업의 사명과 목적을 우선시하는 의사결정이 용이해졌고, 결국 환자참여형 당뇨병관리 식습관개선 프로그램CCD, Cities Changing Diabetes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저개발국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인슐린을 지원한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글로벌 석유기업인 Shell은 사업구조Business Portfolio상의 딜레마 상황으로 인해 미래 경영전략 수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석유 사업은 현재 회사 수익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40년에도 글로벌 에너지 수요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견조한 시장이 예상되지만, 사회적 변화와 정책 기조는 ‘脫화석연료’를 점차 강화하고있기 때문이다.
Shell은 수익성이 좋은 석유사업은 충실한 수익원으로 유지하되 장기적으로는 사업구조를 점차 개선할 것임을 천명했다. 현재 석유 사업이 회사 현금 창출의 약 2/3를 차지하는데 이를 2050년까지 석유, 가스, 청정에너지가 각각 1/3씩 차지하는 사업구조로 변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또한 2050년까지 배출가스 총량을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장기 목표 아래, 단계별 마일스톤을 수립하고 달성 여부를 경영진 평가와 연계하기로 했다.

Levi’s는 자본시장의 관행과 회사의 목적 추구 간 갈등 상황에서 선도적으로 해결의 접점을 모색한 사례이다. 1971년 뉴욕 증시에 상장했으나, 지역사회 및 노동자들과의 가족적 유대를 중시하는 경영원칙에 대한 견해 차이로 창업주 일가가 1985년 상장을 철회하고 다시 가족기업 형태로 운영해 왔을 정도이다. 최근 재상장을 추진하면서 상장 후 주식시장의 요구로 회사가 지속해 온 경영원칙이 흔들리거나, ESG8에 소극적인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과소평가하지 않을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Levi’s는 가족주에 차등 의결권을 부여하여 그 동안의 의사결정 기조를 지속하고 단기 재무실적 위주로 이루어지던 IR 관행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선언했다.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철학에 공감하는 투자자 및 주주들의 지지를 얻어 2019년 3월 재상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례에서 보았듯이 글로벌 유수 기업들은 이해관계자 모두를 고려한 고유의 존재 목적을 추구함과 동시에 기존 제도나 관행과의 갈등을 점진적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양쪽의 관점을 모두 충족시키면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모든 임직원이 적극적인 마인드로 함께 솔루션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중기 사업전략, 신사업 발굴기획, 연구개발, IR 등 중요 경영활동은 물론 직원들의 일상 업무 수행과정도 모두 기업이 추구하는 존재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