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시민인가? ‘21세기 자본과 이중운동의 前衛’

 

 

 

왜 기업시민인가?

6-7년 전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와 그의 저서인 ‘21세기 자본’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책의 핵심은 한 가지로, “21세기 자본수익율은 경제성장율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자본수익율은 계속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경제성장율은 1914년에 약 2%에 도달, 그 이전의 성장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1700년대 한국은 조선 숙종 때로, 인구가 750만-800만인데 기아로 죽어간 사람이 년간 10만명, 병으로 죽은 숫자가 20-30만명이었다. 1970년대에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율을 달성하여 3%에 이르렀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50년도에 제로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반대로 자본소득율은 지속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 결과는 세 가지로, ‘자본 집중도’는 강화되고, 불평등은 증가되고, 세습사회가 굳어진다. (피케티: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가 심화) 따라서 ‘사회국가’(정부가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의 요구가 증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기업시민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21세기 자본주의에서 대기업의 본질은 ‘영생’(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남음)에서 ‘동행’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 상호 호혜가 가능하고 현재 시장이 유지되고 기업의 생존이 가능하다. 그리고 문명이 진보함. 2002년 뉴욕에서의 세계경제포럼에서 “Global Corporate Citizenship” 선언을 채택하여 많은 대기업들(엑슨 모빌, 포드, 나이키 등)이 본격적으로 기업시민을 경영이념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 경영이념에 2개의 축이 형성되고 있다. 하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CSV(Creating Shared Value)이고, 또 하나는 기업시민이다.
SK는 CSR/CSV의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고 측정할 것인가를 모색 중이다. “나의 노동은 어떤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가?”의 답을 찾고 있다.
다른 하나는 포스코가 구축하고 있는 기업시민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나는 시민들의 고민을 공유하는가, 나는 시민들과 공감하고 동행하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CSR/CSV에 비해서 한 걸음 더 나간, 사회 속에서의 활동을 포함한 개념이다.

기업시민의 개념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활동은 3가지 요소, 재생산(Reproduction), 재분배(Redistribution), 상호 호혜(Reciprocity)인데, 재분배와 호혜가 점점 약화되고 이익 최대화의 재생산(Reproduction for profit maximization)만 남게 되었다.
이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위치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3대 기능들, 국가(Coercion: 강제), 공동체(Cooperation), 시장(Exchange)에서 기업은 시장에 머물러 왔다. 여기에서 기업이 중앙으로 위치를 옮기는 것이 기업시민의 첫 발이다. 3대 기능들을 동시에 활성화한다는 의미이다. 실제 이동은 불가능하지만, 이동한 것처럼 행동하라는 뜻이다. “기업의 ‘현실적’ 본질은 그대로이지만, 기업정신의 ‘이념적’ 본질은 바뀐다.”
‘기업 + 시민’은 기업으로 하여금 시민 역할을 수행할 것을 지시하고, 시민권 증진 기능을 담당할 것을 요청하는 개념이다. 시민이 아니지만 시민이어야 하고, 시민권은 부여받지 못했지만 시민권 증진에 앞장서야 하는 존재다. 일종의 은유metaphor다. 기업시민은 시민이 아니지만 ‘시민과 같은(like citizens)’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시민권을 부여 받지는 않았지만 시민권 증진을 위한 사회, 경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시민과 시민권의 본질에 다가가는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는 규범적, 실천적 함의가 바로 ‘기업 + 시민’, 기업시민의 개념이다.
기업시민의 역할은 공여(Provider), 참여(Participant), 촉진(Promoter) 세가지이다. 공여는 기업의 자원과 역량을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데에 제공하는 공여자의 역할이며, 참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발적 참여를 통하여 문제해결에 나서는 중재자의 역할이다. 촉진은 시민권의 증진을 통하여 성숙한 시민사회로의 도약을 선도하는 촉진자의 역할이다.

왜 POSCO인가?

기업시민 개념에 가장 맞고, 이를 선도해야할 기업이 POSCO다. POSCO가 이를 외면하면 이는 ‘직무유기’라고 판단된다. POSCO의 ‘운명’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형산강변의 POSCO 공장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POSCO는 國寶(National Treasure)이다. 거기에 임직원들의 ‘섬세함’이 보인다.
일제시대에 겪었던 시장 훼손, 자본형성 억압, 거기에 시민사회의 형성을 압제한 것을 딛고, 이를 진보의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 공적 사명을 가진 것이 POSCO다.
따라서 현재의 시민사회에 이러한 것을 돌려줘야 하는 공(公)의 임무가 존재하며, 이것이 POSCO 기업시민 정신의 근간이다.
사내로부터 <학습조직>, <혁신조직>, <토론조직>의 활성화를 통해서 이것이 ‘생산성 동맹’의 형태로 사회적 책임(Social Commitment)을 수행함으로써 POSCO의 공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업시민의 이론적 바탕이다. (생산성 동맹: 독일과 스웨덴의 경쟁력과 사회의식 공유로 뭉친 작업팀. 2017.7.20 중앙일보 송호근칼럼 ‘포스코의 생산성 동맹이 진짜 노조다’ 참조)
이전에 ‘제철보국’(製鐵報國)이었고, 조준모교수(성균관대 경제학)가 ‘여민제철’(與民製鐵)이라는 표현을 책(기업시민의 길, 송호근 외, 2019)에서 썼는데, 앞으로의 POSCO가 가야할 지향점으로 ‘민락조재’(民樂造材)를 제안한다. 시민들의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위한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라는 뜻이다. 민(民)을 위한 기업시민으로서 향후 50년을 발전해나가는 POSCO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