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은 악조건 속에서도 이주청소년을 위해 헌신한 교육자

포스코청암재단은 지난 4월 6일 서울 대치동에 소재한 포스코센터에서 ‘2022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이 날 수상자 들은 자신이 걸어 온 삶의 역정과 인간 승리의 스토리를 통해 시상식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특히 교육상 수상자 유해근 재한몽골학교 이사장은 시력을 잃는 악조건 속에서도 중도입국 이주 청소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감동스토리로 큰 울림을 주었다. 지난 30 여년간 교육자로,그리고 우리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 운동가로 살아 온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사장님. 2022 포스코청암상 교육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포스코청암상 교육상 수상소감을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과거 30년 동안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도우면서 함께 살아왔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일은 몽골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 작은 학교를 만든 것이에요. 상을 받고자 해온 일은 아니었어요.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죠. 그렇게 20 여년 이상 세월이 흐르다 보니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과연 제가 청암교육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을 바라고 한일은 아니었으나 항상 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남은 저의 삶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이 땅의 수많은 외국인 이주민들, 특별히 재한몽골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선생님들, 나섬 공동체 여러분들을 섬기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재한몽골학교를 시작하신 계기를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1999년도에 처음 몽골학교를 시작했어요. IMF가 터지자 우리나라에 와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도 생활이 어려워져 그들을 위한 무료급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외국인 노동자들 틈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더군요.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으나 한국어를 전혀 몰라 한국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몽골 아이들이었죠. 부모는 일터에 나가 집에 아무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못해 끼니를 때우기 어려웠던 아이들이 급식소까지 찾아 왔던 거에요.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습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곳곳을 돌면서 때로는 지하방에서, 때로는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자원봉사자 분들과 인권단체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재한몽골학교로 성장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1999년, 8명으로 시작한 재한몽골학교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았을 텐데 유독 몽골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대부분 혼자 한국에 입국합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벌면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죠. 그런데 유일하게 몽골 노동자들만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들어와요. 왜냐하면 몽골 사람들은 원래 유목민족이지 않습니까. 유목민족의 특성은 가족단위로 함께 움직이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몽골 초원에 가면 게르와 게르 사이가 약 5Km에서 멀게는 50Km가 떨어져 있어요. 그런 환경에서는 이웃과 함께 산다는 개념보다는 가족단위로 살아간다는 인식이 강하죠. 그런 민족 특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일하러 오면서도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들어오게 되었고, 또 그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진 것을 제가 보게 된 거죠.

이러한 민족 특성이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몽골인 수가 약 10만명으로 몽골 전체 인구의 3% 수준이나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학교를 시작한 ‘99년도 당시에는 국내 몽골인 수가 3만명 이었고 이들 자녀들이 한국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어 부모가 일을 하는 낮 시간 동안 방치되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게 된 거죠. 그래서 그런 몽골 아이들을 모아서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벌써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군요. 재한몽골학교는 정규 외국인학교로 인가도 받았죠?

학교를 세운 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아이들의 학력 인정 문제였습니다. 초창기에는 몽골에 돌아가도 학력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아이들의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몽골 교육부로부터 학교 인가를 받아야 했는데, 몽골 교육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먼저 인가를 해주면 자기들도 따라서 인가를 내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서울시 교육청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당시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위법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 재한몽골학교의 인가를 계속 거부 했었어요. ‘국내 외국인 중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자 신분인데 이 학교에 인가를 내주면 불법체류를 인정해주는 모순이 생긴다’는 논리였지요. 논쟁 끝에 ‘모든 아동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들고 설득을 시작했고 그제서야 분위기가 바뀌더니 약 2년 동안 공식 절차를 밟아 한국과 몽골에서 학력을 인정받는 정식 학교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몽골의 현직 교사 16명을 학교 비자로 초청해 학생들에게 몽골 교육부 지침에 맞는 몽골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요. 또 10여 명의 한국인 강사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도 가르치고 있고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학교라고 하면 대체로 선진국형 외국인학교를 말합니다. 영미계를 중심으로 독일, 프랑스, 일본, 그리고 일부 화교학교가 있지 않습니까? 국내의 많은 외국인학교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자국에서 세운 학교지만 재한몽골학교는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세운 특별한 외국인학교인 거죠.

 

2005년 외국인학교 인가 기념식

 

학교 설립 인가 과정에서의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시력을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뜻과 상관없이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웃음)
‘만약에 제가 눈이 보였다면’ 이라는 가정을 종종 하곤 합니다만, 만약에 눈이 보였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제 눈이 보였다면 재한몽골학교를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눈이 보였다면 어쩌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게 시력이 없다는 것이 이제는 은총으로 느껴집니다. 한때는 저에게 매우 큰 고통이었고 절망이었는데 지금은 제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졸업생들을 많이 배출하셨는데, 몽골과 한국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겠네요.

현재 재한몽골학교는 초∙중∙고등학교 전 학년에 걸쳐 300여 명의 재학생들이 있어요.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지난해까지 540여 명에 이르고요. 졸업생들이 몽골 현지에서 훌륭한 인재로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정말 뿌듯함을 느낍니다. 현지 경찰기관, KOICA(한국국제협력단) 몽골사무소, 주몽골 한국대사관, 몽골 정부기관, 금융기관 등 몽골 사회 곳곳에 우리 재한몽골학교 졸업생들이 활약하고 있어요. 지금은 작은 학교지만 이 아이들이 10년, 20년쯤 지나면 몽골의 지도자들이 될 거에요. 이 학생들이 앞으로 한국과 몽골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돕고 있지만, 나중엔 결실을 맺어 이 아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17회 재한몽골학교 졸업식

 

몽골인들은 우리와 외모는 많이 비슷하지만 문화적으로 다른 측면도 많을 텐데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몽골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어떤 것이 있나요?

몽골 사람들은 유목민 특유의 호방함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와 비슷한 순수하고 따뜻한 정의 정서도 함께 가지고 있어요. 일단 기본적으로 몽골은 제국의 경험을 가지고 있죠. 13세기에 칭기스칸이 세웠던 제국이 바로 몽골제국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스케일이 커요. 우리보다도 대인적인 풍모가 있다고 할까요? 그리고 대륙적인 기질도 좀 있고요. 그런 부분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유목민적 기질입니다. 요즘은 노마드에 대한 이야기, 디지털 노마드니, 문화 노마드니, 유목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그 유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철학적이고 인류 문화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장점들을 몽골 사람들을 통해 많이 배워요.

한편 우리나라가 정이 많은 민족이면서도 단일 민족국가라고 하면서 외국인에게 굉장히 폐쇄적인 부분이 있어요. 또 우리 몽골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고, 그러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면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나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당당하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 시대,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열린 마음으로 우리 재한몽골학교 아이들을 안아주고 끌어안고 간다면 미래 우리 사회에 크나큰 긍정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 아이들이 몽골의 정체성과 한국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이 아이들이 몽골의 동량으로 성장한다면 두 나라의 든든한 가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재한몽골학교 초창기 학생들

 

다문화시대에 우리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우리사회는 저출산에 초고령화로 인구 절벽의 시대를 맞이한다고 흔히들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 와 있는 우리 아이들로 바라봐야 합니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재들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에게 그들은 더 이상 ‘짐’이 아니고 ‘힘’인 거죠. 미래의 우리 사회를 함께 이끌고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결국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가 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거든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때 그 사람들이 결국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떤 힘이 되어 주는 거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전형적인 다문화 가정 출신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는 몽골 영웅 칭기스칸의 노마드 철학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우리도  ‘내 것’ ‘우리 것’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하면서 함께 나누고 공유하려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몽골학생 외에 타 아시아국가 출신 학생들을 위한 학교 건립도 추진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라는 새로운 학교도 운영을 해오고 있어요. 몽골에서 온 학생들 외에 여러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우리나라를 찾아 온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학교입니다. 저의 꿈과 소망은 이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를 더 좋은 학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학교가 미래에 이주배경 자녀들을 위한 정말 좋은 학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초창기 유해근 이사장과 아이들(2011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50만 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벌써 우리 인구의 5%가 넘는 많은 이주민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죠. 저는 30년 동안 그들의 땀과 눈물을 보며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차별과 편견이 많은 지도 봐 왔습니다. 특히 재한몽골학교 아이들이 당해야 했던 차별과 무시는 저의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사회가 좀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는 새로운 다문화∙다민족 사회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결국 그렇게 살아야만 우리사회가 좀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더 이상 소외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