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기업을 넘어 기업시민이 되는 방법

염재호 前 고려대학교 총장|명예교수

 

전세계에서 사업경험을 하며 효율적인 솔루션을 만들어온 기업이 이제는 수동적으로 세금만을 내는 법인기업을 넘어서야 한다. 사회적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사적인 변화 속 지금과 같은 시기일수록 기업과 경영의 혁신에서 사회적 혁신으로 변해야 한다.

오래 전 중국에서는 이름만 있던 일반인들도 성을 갖게 하기 위해 백 개의 성을 나누어주고 세금을 걷었다. 백성(百姓)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생겨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는 기업을 사람으로 여기도록 법인(法人)화한 다음 세금을 징수했다. 기업은 법인세를 국가에 납부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수동적 주체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도 시민으로서 사회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 권리를 주장함과 동시에 책임도 져야 한다. 기업시민으로서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나 재단도 만들고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 활동을 통해 축적된 시스템 운영 능력을 사회적 가치창출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 기업이 뒷짐 지고 세금만 내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졌고, 정치 행정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점점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18세기 들어 산업혁명의 여파로 부르주아 계급이 급성장했고 프랑스혁명 같은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시민혁명을 통해 세금 내고 복종하던 백성에서 천부적 인권을 주장하는 시민으로 인류의 문명은 바뀌었다.

앞서 제시한 과거 역사를 근거로 이제 기업도 기업법인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기업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에 정치 · 경제 · 교육 · 종교 ·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변화가 몰아 닥치는 가운데 기업도 변하고 있다. 원래 기업의 주된 목적은 이익 창출이었지만 20세기에는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기업의 주요 지표가 되어 주주와 투자기관의 영향력이 커졌다. 21세기에는 주주들(stockholders)뿐 아니라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투자자, 고객뿐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기업을 감시하고, 투자기관들은 영업이익보다 ESG, 즉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기업가치의 핵심 지표로 삼고 있다.

이제는 국가보다는 개인이, 정부보다는 시장이 문제를 더 잘 풀고 있다. 특히, 글로벌화된 개인의 우수성과 사회 공공선에 대한 DNA로 무장된 미래 세대들을 위한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다. 그러나 좌표축을 미래로 이동시키면 기억의 반대말은 상상이 된다. 이제 좌표축을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 기업도 새로운 세대도 무한한 가능성을 성취할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야 한다.

내가 말하는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단 15분, 16분이면 갈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어떻게 이동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과학적 근거와 경험으로 혁신적인 상상을 해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버스를 타고 내리고 또 기다릴 때도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해 버스정거장을 카페처럼 만들어 보고, 기차 안에도 유명 커피숍이 차려져 승객들이 그 커피를 마시며 이동한다면 과연 그것이 비현실적인가 하는 상상력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도 24시간 운영되는 어린이집이 있다면 과연 그것이 비현실적인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사회문제가 이제는 우리 현실의 문제가 되고, 이것을 실현하고 또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나서서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발 단순하게 접근하지 말고 우리의 기발한 상상력과 도전의식으로 이를 해보자는 것이고, 기업이 시민처럼 고민하며 역할을 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기업시민, 미래경영의 길이 되다(2021)’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