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시스템과 기업

 

 

 

 

기업, 유엔 개발전략의 변수에서 상수로

발전 혹은 개발의 맥락 속에서 기업의 의미와 그 역할은 항상 유엔의 관심사였다. 프로젝트나 전략 구상에서 변수에 불과하였던 기업이 개발의 상수로 등장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유엔의 지구정상회의UN Earth Summit부터라고 볼 수 있다. 정상회의에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윤리적 경영, 사업 사례들을 홍보하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과 사례들에 유엔기구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0년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유엔 시스템 내에서의 논의는 두가지 견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모든 활동이 기업의 이미지 세탁을 위한 활동이라는 견해와 좋은 사례들이 있으니 이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이용하자는 견해가 그것이었다.
유엔의 관심이 개발 목표달성을 위한 기업의 긍정적인 역할 이용에 집중된 것은 2000년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에서 공적-사적 파트너쉽Publicprivate partnership이 강조되고, 유엔 글로벌 컴팩UN Global Compact이 수립되면서부터였다.
같은 맥락에서 2003년에는 캐나다의 폴 마틴 수상을 리더로 하는 사적 부문과 개발에 관한 위원단Commission on the Privat Sector & Development이 만들어졌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던 코피 아난의 관심은 사적부문과 기업가 정신의 잠재력이 개발도상국에 어떻게 확산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당면한 개발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영리섹터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의 두가지 문제였다. 2004년에 사무총장에게 제출된 위원단의 리포트Unleashing entrepreneurship: Making Business Work for the Poor는 사적부문을 다룬 이전의 유엔 리포트와 달리 특히 시민사회조직과 기업의 역할에 주목하였다(이러한 기업의 역할 강조는 리포트의 작성에 도움을 주었던 이들 중의 하나가 컨설팅 업계의이른바 빅 포Big Four 중 하나인 McKinsey & Company 였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리포트는 새천년개발목표 달성을 위한 제도환경 가운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공적, 사적 부문간의 파트너쉽Public-private partnership 확대, 기업의 거버넌스 체제 개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기준 강화 등을 특히 강조하였다. 환경과 사회적 평등, 그리고 재정적 이익을 주축으로 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이른바 트리플 보텀라인the triple bottom line이 강조되었다. 이는 기업이 자선 활동차원의 사회적 기여로부터 벗어나서, 본연의 사업활동에 환경과 사회적 요소를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비지니스 전략을 수정하여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환경, 사회, 거버넌스ESG의 부상

유엔시스템에서 ESG논의를 본격화 시킨데는 유엔 환경계획UNEP과 유엔 글로벌 컴팩의 역할이 특히 컸다. 기실 199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윤리적인 투자는 재정적인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세계 담론을 주도하던 밀턴프리드만 류의 신자유주의적 이론이 이러한 가설의 학문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 근거에 의해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있었다. 다름 아닌 포츈Fortune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재정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는 사례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 점차 고조되고 있던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서 ESG 중 특히 환경, 사회적 측면이 기업경영의 주요한 요소로 부각되기도 하였다.
유엔시스템내에서는, 2005년 유엔 환경계획의 재정 이니셔티브UN Environmental Programme Finance Initiative가 글로벌 로펌인 프레쉬필즈 브룩하우스 데링거Freshfields Bruckhaus Deringer와 협력하여 ESG와 투자의 기준 관계에 관한 법적 해석 보고서A legal framework for the integration of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issues into institutional investment를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는 어떻게 투자전략에 환경, 사회, 그리고 거버넌스의 요소를 내재화할 것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였다. 이 보고서가 유엔 시스템내에서 투자 기준 분석에 ESG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투자를 위탁받은 이의 수탁의무fiduciary duty에 해당한다는 규범을 정립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는 곧 글로벌 규범으로 해석되기 시작했고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ESG 중심의 투자가 가능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엔 글로벌 컴팩은 유엔의 각종 규범을 근거로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4개의 영역, 즉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에서의 10가지 원칙을 정립하였다. 또한 유엔과 다양한 사적부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열었다. 유엔에서의 논의와 사적부문에서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2011년 성립된 유엔의 기업과 인권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은 기업과 국가로 하여금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비지니스와 그 조건구성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또한 ESG 특히 사회적, 거버넌스적 측면에 대한 기업의 영향과 가치창출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SDGs와 기업: 어떻게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2015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가 수립되면서 전지구적 차원에서 기업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그 정점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전의 유엔 개발목표와 달리 지속가능발전 목표는 경제발전수준이 낮은 국가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글로벌 기업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에 거점을 두고 세계적 공급 유통망을 갖게 된 기업들은 자신들의 밸류채인이 존재하는 모든 곳의 환경, 사회, 경제적 영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다시 한번 규범화된 것이다.
전지구적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된 기업의 역할이 개발의제의 주요 이슈로 자리 매김되면서 유엔시스템내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기업이 경제, 환경, 사회, 거버넌스 측면에 끼치는 영향과 가치창출을 어떻게 측정하고 정량화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측정할 수 없으면 정책에 반영할 수 없고, 정책에 반영할 수 없으면 기업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역할을 최대화 할 수 없을터였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17개, 그 하부목표가 169개, 그리고 이 목표들을 측정하는 지표는 2020년 현재 231개에 달한다. 그러나 기업의 영향과 가치창출 측정과 관련된 목표는 하부목표 단 하나, 그리고 이를 위한 지표 역시 단 하나에 불과하다(하부목표 12.6.기업 특히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에게 지속가능한 사업을 할 것과, 그리고 보고과정에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정보를 포함할 것을 권장한다. 지표 12.6.1 지속가능보고서를발행하는 기업의 수). 하부목표의 구체성도, 지표의 실효성도 문제이지만 과연 무엇을 지속가능보고서로 보아야 할 것인가, 즉 어떤 측정과 지표가 있어야 지속가능성을기록한 보고서로 보아야 할 것인가 역시 큰 문제이다.

 

측정, 지표 춘추전국시대의 종언?

이러한 문제들을 유엔이 해결하지 못한 것은 수많은 기준과 지표들이 각자 도생의 방식으로 진화한 지속가능성 정보 생태계 때문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현재 사용되고 있는 ESG 주요지표만 4500개가 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ESG 평가와 순위체계만 4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모든 지표와 평가, 순위체계가 이를 만들고 활용하는 조직의 이익과 맞물려있으니 유엔이 쉽사리 표준화를 위해 나서기도 힘들었다.
허나 이러한 평가와 지표의 춘추전국시대도 그 정점을 지난 듯하다. 사적부문은 물론, 유엔시스템 내에서도 표준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이를 위한 움직임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사적 부문에서의 주요한 움직임은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y Forum이 산업섹터와 지역과 무관하게 모든 기업이 지속가능성 혹은 ESG 보고를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지표를 마련하기위해 발표한 리포트Measuring Stakeholder Capitalism towards Common Metrics and Consistent Reporting of Sustainable Value Creation에 잘 나타나 있다. 유엔시스템 내에서는 우선 회계 보고의 국제기준International Standards of Accounting and Reporting 그룹을 이끌고 있는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가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다. 무역개발회의는 핵심 지표 가이드Guidance on core indicators for entity reporting on contribution towards implementation of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2019년에 발표하면서 유엔 내에 존재하는 모든 지표체계의 기본이 되는 33개의 지표를 발표하였고, 이는 현재 유엔글로벌 컴팩트,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 Research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등의 지표체계에 포함되어 보편적, 기본 지표로써 인정받고 있다. 2018년 지표의 단순화, 표준화, 측정사각지대 제로, 전환적 지표의 설정 등을 목표로 다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유엔사회개발연구소의 경우, 무역개발회의의 핵심지표를 포함한 지속가능발전 측정을 위한 삼단지표시스템Three-tiered Sustainable Development Performance Indicator system*을 개발하고, 유엔무역개발회의와 함께 유엔내의 지표관련 기구들간의 연대체를 수립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별과 전환에의 기대

기존의 환경, 사회, 경제와 관련된 모든 유형의 소외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유엔의 SDGs가 가장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전의 비지니스 방식Business as usual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점, 즉 전환transformation의 절박성이다. 이와 궤를 같이 하여, 세계의 많은 기업, 특히 많은 한국의 기업이 낡은 비지니스 방식과의 결별과 전환의 시작을 선언하고 있다고 들었다. 유엔의 개발전략에 상수가 된 기업이 전지구적 지속가능발전의 당당한 주역이 되기 위한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일까?

 


Three-Tiered Sustainable Development Performance Indicator System

UNRISD의 지속가능발전성과
삼단지표 시스템

지속가능성 측정과 보고체계는 최근 급속히 발전했고 이에 따른 많은 원칙, 지표체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지표, 보고체계가 21세기에 우리가 당면한 도전과 조건을 잘 반영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예를 들면,

• 사회적 경제, 임팩트 투자 등 사회적 목적과 가치를 우선하는 경제행위와 조직의 성과를 잘 측정할 수 있는가?

• 녹색경제, 순환경제, 공유 경제 등의 경향과 이니셔티브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가?

• 디지털화, 경제구조변경, 금융화, 유연노동시장 등과 관련된 기술적, 구조적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가?

• 인권, 심화되는 불평등, 기후변화 등과 관련된 규범적 도전과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강조하고 있는 전환적 과제 달성과 관련하여 기여할 수 있는가?

유엔사회개발연구소는 이러한 문제들에 답을 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삼단지표 시스템을 개발하여 적용실험중이다.

환경 지표 중 하나인 물 사용 효율성 지표를 이용하여 이들 지표들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지역 A에서 영업하고 있는 기업 B의 작년과 올해의 물사용 효율성 지표(UNCTAD 핵심지표:사용한 물의 양을 순수부가가치로 나눈 단위)를 각각 8과 7이라고 하자. 맥락화 지표는 리포팅 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여 작년 대비 올해뿐만 아니라 물효율성의 전반적 흐름을 파악한다. 전환지표는 지역 A 에서 영업하고 있는 기업 B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지속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을 국가수자원통계와 위성영상시스템을 통해 계산하여 기업 B가 지구수 자원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기여하였는가를 표시한다. 아래의 가상 통계를 통해 살펴보면, 각각의 지표는 기업 B의 물사용효율성, 지속가능성에 대한 상이한 결과를 보여준다.

① UNCTAD 핵심지표만 보았을때 기업 B는 물사용 효율성에서 좋은 성적을 보인다.
② UNCTAD 핵심지표의 맥락화 지표로 보았을 때 최근 2년간의 좋은 성적은 전체적인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③ 전환지표로 보았을때, 최근 2년간 기업 B가 물사용 효율성을 증가시켰다하더라도 지구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물사용효율성을 증가시켜야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전환지표인 Tier III는 이외에도 기존의 지표체계가 잘 다루지 않았던 영역, 즉 생활임금, 노동권, 정보공개, 민주적 의사결정, 위기극복능력, 기업의 정치적 영향력 등에 대한 지표를 제공하기도 한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www.unrisd.org의 Sustainable Development Performance Indicators 프로젝트 페이지를 참고).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