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 정책의 현황과 전망

 

 

 

왜 사회적 가치인가

지난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이하,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대표 발의하였다. 이 법은 당시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가 발의한 법안이라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되었다. 20대 국회가 출범하자 현 경남지사인 김경수 전 의원이 문재인 의원의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원안 그대로 재 발의하였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여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은 100대 주요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었다. 이후 박광온 의원이 정부의견을 반영한 ‘사회적 가치 기본법’ 수정안을 발의하였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역시 소관 상임위를 넘지 못하여 법안 통과는 요원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가치에 주목하는 세 가지 배경이 있다. 첫 번째는 세월호 참사이다. 참담한 사건의 전후에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공공성을 상실한 정부의 비정상적 행정 관행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공공성’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요구하였다. 두 번째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촛불시민혁명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하였다. 촛불시민들이 제기한 이게 나라냐라는 근원적 물음에 민주정부는 어떤 원칙과 절차에 의해서 작동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답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격차, 경제적 성장과 삶의 질 간의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다. 이는 촛불시민혁명의 또 다른 동인이자 절박한 요구였으며, 단지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에 과도하게 편중되었던 지난 정부의 잘못된 정책운영이 그 이면에 있었다.
결국 사회적 가치는 무너진 공공성을 회복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게 정부가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국가 경영의 기본 철학이자 좌표로서 제시된 것이다. 또한 경제적 효율성에 편향된 정책 기조를 혁신하여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도록 균형잡힌 정책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가치는 단지 공동체가 살아있는 강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사회정책의차원에서만 도입된 것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잣대로서 공공정책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포용적인 경제정책이자 새로운 성장정책의 의미를 포함한다.

 

전략과 목표

‘사회적 가치 기본법’ 제정이 장기화되자 정부는 유관 법령의 정비 및 관련 정책을 적극 개발하여, 법제도가 미비한 가운데에도 사회적 가치 중심의 국정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우선 2017년 말 정부는 공기업, 준정부 기관 등 공공기관의 평가체계를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바꾸었고, 곧바로 중앙부처 및 지자체 평가에도 반영시켜 나갔다. 또한 정부혁신 과제에도 사회적 가치를 적극 반영하여, 다양한 혁신 정책들이 사회적 가치 관점에서 추진되도록 조치하였다. 사회적 가치 정책과제 발굴을 위해 기재부를 중심으로 관계부처 회의를 지속해왔고,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회적 가치 TF를 통해 민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해왔다. 그 결과 2020년 1월 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 부처 합동으로 ‘사회적 가치 추진전략’을 발표하게 되었다.
정부는 세 가지 방향에서 사회적 가치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 정부 주요 정책의 목표를 사회적 가치 창출에 두고 공공부문 전체의 운영방식을 사회적 가치 창출에 보다 효과적이 되도록 변화시켜 나가고자 한다. 둘째, 기업, 시민사회 등 민간 부문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창출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셋째, 사회적 가치 창출이 조직의 주된 사명인 경제 주체로서 사회적경제를 적극 활성화한다.
실제로 지난 1월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 가치 추진전략(이하, 추진전략)’에는 이러한 세 가지 방향성이 각각의 전략과 목표에 잘 반영되어 있다. 우선 추진전략은 사회적 가치를 인권, 환경, 일자리, 지역경제, 시민사회 등 13가지 세부과제로 제시하여 국가 주요 정책 전반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실현’이 정책 운영의 결과 및 성과 차원 수준으로 편향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직, 인사, 재정, 기관 내외부 평가 등 공공기관 운영체계 전반에 사회적 가치를 내재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부 조직관리 지침에 사회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사회적 가치 전담부서 등의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공공기관장 성과계약, 신규 직원 인사채용 및 승진 심사 과정에도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예정이다. 또한 예산 편성 및 재정 운용에서도 사회적 가치 관점을 확대해 갈 계획이며, 사회적 가치 100대 핵심 사업을 매년 발굴하고 기금 운영에도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자 한다. 기금과 관련해선 정부는 19년에 복권기금 운영체계 전반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개편한 바 있으며, 단계적으로 타 기금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이미 18년에 사회적 가치가 반영되어 개편된 공공기관 평가 및 정부업무 평가는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고, 20년부터는 기관내부의 자체평가 및 자율평가도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것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다음으로 추진전략은 글로벌 시장 환경의 변화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협력의 필요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통상 규범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가치 창출력은 기업의 필수 요건이자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변화 적응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교육, 컨설팅, 정책금융 우대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해당 기업이 사회적 가치 창출력을 점차 높여 나가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있어 공공과 민간의 협력, 지역 공동체의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하고 이를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제도개선과 행정혁신의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추진전략은 사회적 가치 창출이 핵심 목표인 사회적경제 조직의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는 문재인 정부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이다. 비록 20대 국회에서도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은 쉽지 않은 국면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정책과제 발굴 및 시행, 유관법령 정비 등으로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17년 10월 ‘사회적경제 활성화방안’, 18년 2월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 등 18개 대책이 발표되었고, 일자리위원회 산하에 사회적경제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관계부처 국장급 TF도 운영되고 있다. 추진전략은 사회적경제 정책이 사회적 가치 중심의 국정운영이라는 정책목표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고, 양적 확대를 넘어 규모화와 질적 성장을 위한 정책 환경 조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과 전략이 구체화되면서 이에 대한 공공부문의 대응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LH, 코트라 등 주요 공공기관들의 경우 초기에는 사회적 가치를 기관의 사회적 책임 활동 정도로 협소하게 이해하였지만 현재는 기관운영과 고유사업, 사회적 책임 활동까지 포함하는 전사적인 차원의 경영혁신 과제로 실행해나가고 있다. 사회적 가치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이사회 구성부터 균형인사의 원칙을 반영하고 있으며, 일부 공공기관들은 민간의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사회적 임팩트를 정량화하는 적극적인 노력도 보여주고 있다.
고유사업을 혁신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도 확산되고 있는데 신용보증기금은 금융에 적합한 사회적 가치 측정모델을 개발하였고 정책금융 운영에 적용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기금은 사회주택 금융지원센터를 개설하였고, 코트라는 해외 무역 지원사업 대상 선정 시 사회적 가치 가점제도를 도입하였다.
사회적 책임 활동에서도 단순 기부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 과제를 발굴, 실행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많아지고 있다. LH는 사회적 경제 기업들과 협력하여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청소 서비스를 개발하고 지역 주민들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협력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공공이 보유한 자산을 개방하여 새로운 일 기회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적극적 민관협력은 주목할 만하다. 산림청은 보유자산을 활용한 사회적 가치 창출 차원에서 국유림을 산촌마을 주민들이 만든 마을기업 등에 개방하여 산림 자원을 활용한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협력하고 있다. 한수원은 댐 주변 지역 주민들의 협동조합에게 수상 태양광 사업 지분 참여를 허용하고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여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사회적 가치 추진전략’은 선도적인 공공기관들의 이러한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이 전체 공공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대와 전망

2020년 1월 정부는 ‘사회적 가치 추진전략’을 발표했고 곧이어 신종 코로나 광풍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든 일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정부의 안정적이고 능동적인 대응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에 힘입어 감염병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데에는 주목할 성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팬데믹으로 인해 국제사회는 1930년대의 대공황보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극복해야 할 사회경제적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현재로선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확인한 분명한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고, 민관의 적극적이고 긴밀한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란 점이다. 사회적 가치 전략은 공공부문에 요구될 전에 없던 과도한 역할과 민관의 전방위적 협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좌표이자 기준점이 될 것이다. 1997년 IMF의 충격과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국민기초생활법에 따른 자활사업, 사회적 일자리사업과 같은 선진적인 사회정책과 제도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정책에서는 경쟁력있는 기업을 우선 살려 우리 경제 전체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기본 방향이 다른 모든 정책을 압도했다. 위기의 시간이 지나고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없었으며 고착화된 불평등과 격차, 비정규직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사회적 가치 전략을 내면화해 온 문재인 정부의 접근법은 과거의 위기 대응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자영업 및 중소상공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신속히 전면에 내세우고, 재난 지원금 등 지자체와의 다양한 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지방 혁신도시 공공기관들도 지시사항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 전략을 수립하고 능동적인 대응을 해주고 있다.
중소상공인 및 사회적경제 조직들에 대한 공공조달을 확대하고, 자발적 참여자를 중심으로 급여의 일부를 지역상품권으로 제공하여 소상공인을 돕고, 점심시간에 사실상 휴업 상태인 인근의 학교급식 사회적기업들의 도시락을 대량으로 주문하는 공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우연처럼 모든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과제를 기획하는 시점에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전대미문의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공공부문이 사회적 가치 전략을 통해 실행해나가고자 했던 일자리, 상생협력, 민관협치, 지역공동체 기여 등 모든 과제들이 일시에 긴급하고 절박한 필요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코로나 사태는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전략 내면화를 매우 강하게 추동해낼 것이고, 그 실행 방식도 고도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민간 부문의 사회적 가치 확산을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도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이후 특히 충격이 큰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는 기후와 환경문제 등에 시장의 보다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구온난화와 서식지의 급속한 파괴 등이 코로나와 같은 전염성 질환을 유발했다는 성찰과 반성이 빠르게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도 강화되고 있는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한 통상규범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민간으로부터 강한 요구에 힘입어 확대될 것이다.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도 지금보다 중요한 과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상업화된 대규모 요양시설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될 것이고, 고혈압 등의 기저질환의 위험성을 목격하였기에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진출하고 있는 지역 차원의 예방과 힐링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또한 고용위기에 취약한 프리랜서들의 협동조합 설립, 빠르게 늘어나는 실직자들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도산하는 기업에 대한 협동조합 방식의 노동자 기업인수, 중소상공인들의 협동조합을 통한 규모화 등은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지역 차원의 효과적인 재난 대응을 위한 전통적인 대형 사회적경제 조직들 즉 농수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의 역할도 재고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코로나와 같은 대형 위기를 겪어 나가면서 사회적 가치는 문재인 정부의 일시적인 브랜드가 아닌 우리 공공부문의 주요한 국정철학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민간부문에도 폭넓게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우리가 결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가치가 정부와 민간의 공유가치가 되어 보다 안전하고 강한 사회,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을 상호 협력을 통해 창출해가는 그런 미래를 희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