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시민의 미래: Key Sustainability Factors KSFs

 

 

 

 

기업시민의 모습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어떤 인류의 역사에서보다도 강조되는 때다. CSR이라는 개념이 서구로부터 그대로 수입되어 정치, 문화, 역사적으로 이질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고민 없이 주류적 흐름에 편승하려는 행태는 천편일률적이고 심지어 비효율적이며 무조건적인 수용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지난 2015년 3월, 스타벅스는 미국 내 주요 일간지에 ‘레이스 투게더Race Together’라는 슬로건을 내건 캠페인을 내걸었다가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자 일주일 만에 중단하고 하워드 슐츠 회장은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막기 위해 공개서한을 보냈어야만 했다. 물론 슐츠 회장은 좋은 취지로 2014년 美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흑인청년의 사망 사건을 통해 인종차별 철폐와 관련해 행동적 차원의 캠페인을 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스타벅스 일선 매장에 비해 중역은 대다수가 백인이라는 사실과 종이컵에 레이스 투게더를 쓰거나 스티커를 붙여주는 행위는 고객들로 하여금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켰다.1 미국 내 다른 기업과 달리 로비가 아닌 투명한 방식으로 진행하며 이윤창출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일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고객들이 정치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 일방적인 기업의 캠페인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 이처럼 기업의 책임에 대한 범주가 불분명하고 조직 전체에 잘 내재화되지 못한 전략의 실행은 자원 배분과 경영의 비효율을 낳는다.
그렇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논의가 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이해관계자의 요구와 사회적 기대에 미치지 아니하면 그 기업은 사회와 갈등을 일으키고 곧 기업 활동의 정당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보면 기업이 이해관계자와 사회의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을 충족시키면 기업은 높은 명성과 지속가능성을 획득하며 나아가 사회의 요구를 훌륭히 분석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쟁력 창출의 기회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곧 새로운 마켓 창출의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다. 과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태동하던 시기만 해도 기업의 존재 이유는 여전히 이윤 창출이었고 사회 책임은 경제적 가치의 결과변수로 보았다. 그러나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련의 분석과 전략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마켓을 창출해낸다는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적 가치의 원인변수가 되며 기업의 전략으로써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의 전통적인 전략적 사고방식에서 보면 기업의 존속가능성은 경쟁 우위의 획득 여부에 있다. 모든 승리한 조직은 경쟁우위를 가진 조직이다. 이를 위해 수 많은 기업들이 무의식적으로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주도권 싸움을 벌인다. 경쟁우위를 확보하면 승리를 가져다주지만 이를 얻기 위한 과정은 치열한 싸움터가 되고 만다. 심지어 과도한 경쟁은 조직의 시야를 기존의 존재하는 자원과 가치로 좁히기 때문에2 새로운 성장 동력이 나타나기 어렵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기업에게 가장 좋은 시장구조는 오직 하나의 기업이 주도하는 독점 시장이다. 따라서 독점 시장처럼 무경쟁無競爭과 비경쟁非競爭을 통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마켓을 창출하고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는 ‘비파괴적 창출’이 가능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비파괴적 창출은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노력의 과정이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의 모습이며 기업시민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전략적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시민의 문제의식

기업시민은 기업도 일반 시민처럼 지역사회 등의 공동체 구성원이며 그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업시민은 단순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기업의 방향성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방향과 기업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바로 ‘시민’이라는 단어 안에 이미 내포되어있다. 시민 즉, 인간이라면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한 시민으로서 문제의식을 지녀야 한다. 그 문제의식은 사람마다 다르듯 기업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식을 지니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인간의 경우, 결여된 문제의식은 인간이 지닌 지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말 그대로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아무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넘겨버려 단편적인 지식의 조각들만이 남아 인간의 사유를 공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단지 군중 속의 한 사람으로 소멸하지 않으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끊임없이 곱씹어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경우, 기업에게 내재된 문제의식이 없으면 모든 기업 활동은 무의미하며 그냥 수많은 기업 중 하나로 있다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와의 상호적 관계속에서 수없이 문제의식을 사유해야하며 문제의식을 소유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시민’으로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 다음에선 이러한 문제의식을 생각하고 지닌 기업들의 비파괴적 창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파괴적 창출 사례

백내장은 대표적인 안과 질환으로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지지만 수술이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가 빈약한 인도에서는 1,000만 명이 넘는 시각장애인 중 80% 이상이 경제적 고립 때문에 제때 백내장 수술을 받지 못해 질병의 고통은 물론 직장도 구하기 힘들어 가난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외과의사인 고빈다파 벤카타스와미Govindappa Venkataswamy 박사가 정년퇴임 후 인도의 마두라이 지역에 아라빈드Aravind안과병원3을 설립하여 극빈층에게는 무료 혹은 18달러의 수술비만을 받았다. 2011년에는 31만 5,000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았으며 그 중 절반 이상이 무료로 받았다.
1976년 11개 병상의 소규모 병원으로 시작해 현재 7개 병원에 4000개 병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체 고용 인원만 3,000명이 넘는 세계 최대 안과 병원으로 성장했다.
사실 창업자인 고빈다파 벤카타스와미 박사는 인도 내 수많은 질환 중 예방이 가능한 시각 장애를 없애자는 미션을 가지고 병원을 시작했다. 또한 기존의 안과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산업에서 고객이 되지 못했던 극빈층을 대상으로 저비용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맥도날드가 표준화된 햄버거 생산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에 착안하여 수술 과정을 표준화 및 분업화하여 새로운 수술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수술대 2개에 의사 1명과 간호사 4명을 배치하고 현미경은 수술대 사이에 한 개만을 설치하며 인공수정체 교체 등의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과정 외에는 전부 간호사들이 처리하여 같은 수술 시간이더라도 다른 병원에 비해 6배나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었다. 나아가 인공수정체는 하나에 100달러에 달하는 고가이므로 괜찮은 품질의 중저가 의료 상품을 판매하는 오로랩Aurolab이라는 사회적 기업과 제휴를 통해 병원 바로 옆에 백내장 수술렌즈 생산공장을 세워 10달러 이하로 가격을 낮췄다.
또한 병원이 가진 가치에 공감한 부유한 환자들에게는 높은 수술비를 청구하는 이원적 가격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아라빈드 병원은 대략 60%의 환자가 무료 수술임에도 40%가 넘는 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기업의 핵심 지속가능성 요인

아라빈드 안과병원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야말로 필자가 생각하는 기업시민의 참모습이다. 특히 단순히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기업이라는 편협한 개념도, 정부나 외부 지원에 의존하는 모습도 아닌 기업의 문제의식과 비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기존 시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마켓을 창출해내는 모습 말이다. 과거 전략적 관점에서 논하던 핵심 경쟁 요인KCFs, key competing factors은 기업시민 시대에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더 이상 핵심 경쟁력이 아닐 수도 있다. 이제는 기업의 핵심 지속가능성 요인KSFs, keysustainability factors을 추가하여 업계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업계의 현재 전략 프로파일을 보여주는 전략 캔버스strategy canvas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기존의 핵심 경쟁 요인 파악을 통한 산업 내 전략 분석툴인 전략 캔버스에 핵심 지속가능성 요인을 덧붙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업의 전략을 고민한 결과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면서 새로운 마켓을 창출하는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81년에 설립한 美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 위치한 프로그스 립 와이너리Frog’s Leap winery다. 와인 시장의 기존 핵심 경쟁력은 가격, 전문용어 사용 여부, ATLabove the line 마케팅, 와인의 종류, 산지의 명성, 숙성된 품질, 와인 맛의 복합성 등이 있다. ERRC4 액션 프레임워크를 통해 기존 업계의 경쟁요소 중 불필요한 것은 제거하고 과한 것은 감소시키고 필요한 고객의 가치는 증가시키고 혁신을 통해 기존에 없는 것들을 창조하여 재미있는 마케팅이나 선택의 용이함을 창조하거나 전문용어 사용을 줄이는 등 업계와 다른 전략적 포지션을 취하여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5 그러나 프로그스 립 와이너리는 이러한 가치실현은 물론이고 기업시민의 가치를 추가 고려하여 기업의 비전에 문제의식을 담고 다른 기업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태양열과 지열을 통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Dry-farming 공법을 통해 물 사용과 CO2 배출을 줄이면서 포도의 풍미를 증가시키는 등 환경적 영향을 고려했다. 또한 Bio-Dynamic 공법을 통해 포도와 토양, 곤충 등 포도밭과 관련된 모든 생태계에 미치는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였다. 고용의 관점에서도 모든 직원은 정규직으로 고용되고 보통의 와인 농장과 달리 퇴직금과 의료보험까지 보장이 된다.6
이처럼 기업시민은 기업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기업의 비즈니스와 사람, 사회, 환경 등 여러 관계를 고려해 핵심 경쟁력 요인 이외에도 핵심 지속가능성 요인을 발굴해내기 위해 끊임없는 사유를 요구한다. 우리가 소크라테스나 공자와 같은 인물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은 무엇을 위해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역사에 남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기업은 진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을 비파괴적으로 영위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실현해내는 진정한 기업시민정신을 지닌 조직일 것이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