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시민활동의 성공조건은 진정성

 

 

 

 

사회적 책임 활동의 진정성

2013년 사회적기업연구소와 동아시아 연구원이 공동으로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은 해마다 사회공헌지출액의 규모를 꾸준히 늘려왔지만(그림 1) 국민들의 기업의 사회공헌에 관한 평판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그림 2) 기업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기업의 활발한 CSR 투자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반기업정서를 포함하여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으나 필자는 그 원인의 핵심을 “진정성”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진정성은 내면적 가치와 신념을 반영하여 수행되고, 외부에도 꾸밈없고 일관성 있게 표현된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주장하는 바와 행동하는 바가 일치된 상태를 의미하며, 불일치된 상태는 위선으로 인식된다. CSR은 개념적으로 “영리기업의 비영리적 행동” 또는 “사익 추구 조직의 공익적 활동”이라는 자기모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CSR의 진정성은 어쩌면 당연한 평가의 잣대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코넬대학에서 출판하고 있는 경영학 분야의 저명 학술지 중 하나인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018년 3월호의 한 연구는 CSR의 진정성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기업들이 그들의 사회공헌 성과나 환경 친화적 노력을 인정받아 어렵사리 획득한 국제 인증이나 수상 업적 등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는 ‘전략적 침묵strategic silence’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 있는데, 그 이유로 지목한 것이 바로 진정성의 의심에 대한 우려이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 노력들이 자칫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기업들이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진정성이 중요해 진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기업의 존재 목적과 그 활동을 바라보는 시민의식이 성숙해지고 있다. 시민들은 기업을 주주의 전유물로 인식하지 않고, 기업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의 조화롭고 상호호혜적인 관계 속에서 본연의 사업들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의식은 단순한 반기업 정서와는 다른 것이며, 기업이 CSR 활동을 추진함에 있어서 과연 기업 스스로의 존재 목적에 대한 숭고한 철학이 존재하는 지를 묻는 것에 가깝다. 둘째,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보다 기업의 활동들이 외부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 숨겨진 행동과 의도가 포착되는 가능성과 빈도가 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세금도피를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세간에 밝혀지면서, 그들 의 CSR 활동은 진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상당수의 기업들은 CSR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CSR을 기업의 이미지 제고나 단기적 평판 관리의 도구 정도로 치부하다 보니, 장기적이고 일관적이며 진정성 있는CSR 정책을 펼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정성의 평가 기준

이러한 배경 하에 기업의 CSR 활동들은 사회에서 “진정성 테스트”를 받고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는 CSR의 진정성을 무슨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을까? 필자는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지난 20여 년간 수행된 국내외 CSR 연구 중 진정성을 주제로 한 39개의 논문을 분석하여 6개의 유의미한 기준을 도출해 보았다.1 포스코도 기업시민활동이 진정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진단해 볼 필요가있다.
첫째, CSR의 차별성distinctiveness을 들 수 있다. 이는 해당 기업의 CSR 활동이 다른 기업들과 얼마나 차별화되어 있는지를 의미하는데, 해당 기업의 CSR활동이 다른 기업에서 실시하고 있는 활동보다 독창적이며 구분된다고 평가할 때 사람들은 CSR에 진정성을 느낀다. 맥락적 고려없이 CSR 선도 기업이나 우수 사례를 무비판적으로 벤치마킹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CSR의 정합성fit을 들 수 있다. 이는 해결하려는 사회적 문제와 기업 고유의 비즈니스 영역(혹은 업業이나 업종)간의 정합성 또는 연관성을 의미한다. 기업의 핵심사업과 CSR 활동의 정합성이 높은 경우, 사람들은 CSR에 대한 기업의 전문성을 높게 판단하여 신뢰를 보내게 되고, 또한 평소 연상되던 기업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아 인지과정 상에서 불필요한 의심을 줄이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담배, 카지노 등의 유해산업sinful industry에 속한 기업의 경우, 소위 낙인이론에 근거하여 CSR활동과 기업의 정합성이 높을수록 오히려 부정적 인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존재한다.
셋째, CSR의 일관성consistency 및 배태성embeddedness을 들 수 있다. 일관성은 기업의 CSR활동이 기업 내부의 전략과 가치, 신념 등과 정렬되는 정도를 의미하며, CSR정보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배태성은 기업이 일관성 있는 CSR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로 나타나는 상태이며, CSR이 해당기업의 비즈니스의 핵심에 있고, 직원들의 일상적 업무와 행동양식에 내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관성과 배태성은 속성상 기업 내부 정보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으므로 주로 내부 이해관계자인 종업원의 진정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관성과 배태성이 높은 경우, 종업원은 소속 기업의 CSR 활동을 합리적으로 여기고, 신뢰하게 되어 CSR의 진정성을 지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넷째, CSR의 지속성durability을 들 수 있다. 이는 기업이 CSR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는지를 말하며, CSR에 대한 행동이나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유지되는 정도를 의미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소비자의 CSR에 대한 지속성 지각이 높을수록 진정성 평가에 더욱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의 연구 중에도 CSR의 지속성의 효과를 테스트한 연구가 있는데, 연구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다국적기업들이 해외 현지국에 진출할 때 묵시적인 외국인비용liability of foreigness을 지불하는데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CSR 활동들을 전개한다. 이때 다국적기업의 CSR 활동 기간이 상당 기간 지속되어왔을 때에만 그 진정성을 인정받아 CSR이 외국인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다섯째, CSR의 영향력impact을 들 수 있다. 영향력이란 기업의 CSR활동이 사회에 실제적이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의 여부를 의미하는데, 이는 종종 기업의 규모와 이익에 비해 기여가 충분한지에 대한 평가가 수반되기도 한다. 영향력에 관해 과거에는 주로 기부금 액수와 규모 등과 같이 양적인 측면에 주목하였으나, 최근에는CSR 정책의 수, 기업 인적자원의 투입시간 및 헌신정도, 기업 규모와 연계된 합리적인 기부액과 같이 영향력에 대한 정교한 판단 기준들이 사용되고 있다.
여섯째, CSR의 동기motive 인식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은 기업의 CSR 활동의 진정성을 판단할 때 그 활동의 동기가 도구적인지 가치 지향적인지를 판단한다. 도구적 동기 인식은 CSR 활동을 기업의 이익 증대를 위한 ‘우회적 수단’으로 간주하고, 기업은 공익 추구 시에도 여전히 자기본위적 동기에 지배받는다고 인지하는 경우를 말하며, 이러한 동기의 인식은 CSR에 대해 비호의적 태도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반면 기업의 CSR 활동이 사회 문제에 대한 진정한 우려와 관심에서 비롯된 가치 지향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지하는 경우, CSR의 진정성을 지각한다. 또한 CSR의 추진 동기에 관해 실제 동기와 표현 동기간의 일치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기업이 CSR 활동을 추진하는 실제적 동기와 외부를 통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동기가 일치할 때 사람들은 CSR의 진정성을 지각하게 되지만, 만약 두 동기가 서로 불일치한다면 기업이 눈속임을 했다는 불쾌감에 더 큰 회의와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CSR의 진정성을 인정받은 기업들에게는 무엇이 돌아오게 될까?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자의 호의적인 대응 행위들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기업 성과에 직결된다. 우선 외부 이해관계자인 소비자는 그들이 가진 구매력을 바탕으로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 구매/재구매 의도 상승, 충성도 증가, 부정적인 구전을 줄이거나 긍정적 구전을 전개하는 등의 긍정적 대응행위를 보여주게 된다. 또한 이러한 긍정적 대응행위들은 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와 이미지, 기업 명성과 같은 무형의 자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편, 내부 이혜관계자인 종업원의 CSR 진정성 인식은 소속기업에 대한 높은 신뢰와 지지를 형성하게 되며, 조직에 대한 애사심, 조직몰입, 직무만족 등의 긍정 행위는 증가하는 반면 이직의도는 감소되어 조직운영과 성과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필자가 단독으로 수행한 회귀분석에 따르면 (미국기업 대상), CSR의 진정성이 높은 기업군들이 낮은 기업군들에 비해 재무성과가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업시민 진정성을 위한 점검

지금까지 기업의 CSR 활동에 있어서 진정성은 왜 중요하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끝으로 필자는 포스코가 진정성 있는 기업시민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자기점검을 제안하고 싶다.
(1) 확고한 사회적 책임 철학 수립하라. 서양 속담에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라는 표현이 있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金은 아니듯이, 명분이 좋다고 모든 기업시민 활동이 똑같이 평가될 수는 없다. 기업시민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선의 관리자들은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기업시민 활동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한 일이니 적당히 해도 모두가 인정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사회적 책임에 관한 확고한 철학, 미션 비전 등을 수립하고, 전사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진정성있게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방법들을 모색해 나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시민 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실질적 대화 채널들이 기업 내에 존재해야 한다. 그 대화 가운데에 포스코만의 차별화된 기업시민 활동들이 도출될 수 있고, 본업과의 연관성을 지속적으로 고민할 수 있으며, 전사곳곳에 녹아들어간 순도 높고 진정성 있는 기업시민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2) 진정성은 초장기적 관점에서 유효하다. 진정성 있는 기업시민 활동은 실제로 사회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른바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가 발생한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스스로의 기업시민 활동에 관한 초장기적 관점을 유지해야한다.
그래야만 그러한 활동이 실제로 기대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의 효과성을 확인해 볼 기회가 생기게 되며, 그렇게 확인된 효과성은 더 발전된 기업시민 활동의 추진 동력으로 작용한다. 국내 모 기업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사회공헌활동 구호를 모르는 국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기업은 사회적 책임에 관해 오랫동안 한결 같은 초장기적 관점을 유지해왔기에 영향력이 막강하다. 제 2, 제 3의 우리강산 브랜드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3) 모럴 라이센싱 오류에 주의하라. 기업시민 활동에 열심을 다 하고 어느 정도의 성과도 확인되는 시점이 되면 자칫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성이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2001년 심리학자인 모닌과 밀러에 의해 처음 소개된 개념인 모럴 라이센싱 이론Moral Licensing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과거의 선행을 마치 ‘자격증’처럼 여겨 향후의 비윤리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쉽게 말해, “우리 회사가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도 사회는 용서해주겠지”라고 착각하는 것과 유사한 인식 오류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업시민 활동을 열심히 하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발각되었을 때 국민들은 배신감에 더 큰 분노를 느끼게 되며, 그동안 수행해왔던 기업시민 활동의 진정성도 심각하게 의심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 공헌에 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자칫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출처 : 기업시민리서치 4호